[정길연] '사랑의 무게' 일그러진 가족관계 묘사
기사입력 2000년 01월 16일 15시 23분
정길연씨의 `사랑의 무게'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남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근친상간이다.
말 그대로,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이야기다. 작가가 실화를 바탕으로, 친구의 양해를 얻어, 상상력을 덧붙여 완성했다. 일그러진 가족관계, 어긋난 사랑을 주로 다뤄온 기존 작품과 같은 길 위에 있다.
소설은 20대 초반의 마취과 레지던트 회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회명과 그의 누이 인우의 `꼬리물기 게임'이다.
이들에게 사랑은 불행의 씨앗이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둘 다 팽개치고 떠돌이처럼 살던 어머니의 주선으로 만난 이후, 회명은 인우를 스토킹한다.
회명의 사랑은 공격적이고 가학적이다. 어머니에 대한 복수의 감정으로 인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우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회명은 인우를 끊임없이 가두고 싶어하고, 인우는 회명에게서 끊임없이 도망치려 한다.
여기에 회명과 인우의 갈등을 부추기는 `제3의 인물' 미령이 등장한다.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면서, 다른 사람을 농락해야 희열을 느끼는 여성이다.
작가는 회명, 인우, 미령을 통해 세 가지 사랑법을 보여준다. "사랑의 방식이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모든 사랑은 진실하다. 그러나 일방적인 사랑은 폭력이다. 쌍방향 사랑이 이뤄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회명은 결국 치사량의 마취제를 맞고 자살한다. 인우가 죽을 때까지 자신을 잊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복수다.
작가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무서우리만치 냉정하게 이끌어간다. 등장인물들과 `차가운 거리'를 유지한다. 어떤 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사랑은 없다. 모든 사랑은 진실하다. 다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있을 뿐"이라고 낮게 속삭일 뿐이다.
[임정식기자 dada＠sportschosun.com]
[조용희기자pupo4＠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