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음모 (22)
기사입력 2000년 01월 16일 15시 20분
정현희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회의실 안에는 이대진과 차만석, 서미영까지 넷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리고 달러로 계산을 했다는군요. 100달러짜리로만 내놓아서 인상이 깊었다고 했어요."
"보스 말씀대로 비자금이 있는 것 같은데요."
쓴웃음을 지은 차만석이 이대진을 보았다.
"한달 동안 5000달러 가까운 돈을 옷값으로 내는 북한 공작원이 있겠습니까?"
이대진이 머리를 기울였다.
"나는 용의주도한 김경희가 그런 식으로 의혹을 노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수상하다."
"그럼 그것이 의도적이란 말입니까?"
"포트라사라는 유명한 가게에 가서 그것도 달러로 옷값을 내다니. 더구나 며칠 전에 내가 입고 있는 옷값을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더니 대뜸 횡령한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고 내쏘더군."
"그렇다면 부모가 부자일까요? 혹시 북한에서도 코스닥 투자로 떼돈을 번."
이대진의 시선을 받은 차만석이 말을 멈추고는 침을 삼켰다. 그러자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서미영이 말했다.
"어제는 제가 서류를 전해주러 갔더니 프랑스어로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어가 유창했어요."
모두의 시선을 받은 서미영의 볼이 조금 붉어졌다.
"제가 외국어 부전공으로 프랑스어를 선택해서 조금 알아요. 김경희는 대금의 입금 확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대금?"
정현희가 묻자 서미영은 머리를 저었다.
"그건 모르겠어. 내용을 들으니까 이번달 입금은 된 것 같았지만."
"그 여자가 프랑스에서도 사업을 벌여 놓았을까요?"
정현희가 물었으나 이대진은 머리를 저었다.
"알 수 없어. 프랑스에 있었다는 건 들었지만."
강철민으로부터 일본은행의 보증서를 주겠다는 각서를 받은 다음부터 오더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주에도 1000만달러 가까운 물량이 나갈테니 이번달 수출물량은 2000만 달러가 될 것이다. 이대진이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김경희는 북한쪽 사업부단장의 목을 단칼에 자른 여자야. 한국측 기관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말입니까?"
차만석이 묻자 그는 조경택이 갑자기 교체된 사연을 말해 주었다. 김재선이 김경희와 조경택과의 사건을 전해준 것이다. 이대진이 말을 마쳤을 때 차만석이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그쪽에서는 성희롱에 대한 처벌이 엄격한 것 같습니다."
"김경희의 위상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예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측 기관에서도 김경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말이군요?"
머리를 끄덕인 이대진이 정현희와 서미영을 차례로 보았다.
"그 여자는 한국의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해. 공무원은 물론이고 기업인도 모두 부패했고 돈이면 다 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이대진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미 내 약점도 샅샅이 조사해 놓았어. 날 돈으로 매수하려고 수수료도 늘렸고."
"흥미진진하군요."
불쑥 말을 뱉았던 정현희가 이대진의 시선을 받고는 머리를 숙였다.
"농담이었어요. 보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