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라운지]낚시 삼매경 빠진 '농구 천재'
기사입력 1999년 05월 08일 14시 41분
어슴프레 동이 트면서 랜턴 불빛도 잦아들었다.
잔잔한 수면 위를 아롱거리던 찌가 조금씩 뿌예지기 시작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안개.
"짜식들아, 일어나."
비음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텐트에서 곤한 잠에 빠져있는 이들을 흔들어 깨운다.
지난 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인근의 한 저수지.
`농구천재' 허 재(34)가 나래 프로농구단 후배 10명을 끌고 출조(出釣)했다.
얼마전 결혼해 호주에서 허니문의 단꿈에 빠져있을 이흥섭을 빼곤 전원 참석.
나래는 유난히 `꾼'들이 많은 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농구공을 잡기전에 낚싯대를 먼저 드리웠던 허 재를 비롯, 정경호 정한신 등도 조력(釣歷)이 10년을 훨씬 넘은 낚시광이다.
물론 신기성 신종석 등 신세대들은 낚시에 별 흥미가 없었지만 허 재가 밤낚시를 가자고 제안했을 때 군말없이 따랐다.
호젓한 호수가에서 상념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번만 손맛을 느껴봐. 아마 역전찬스에서 3점슛 넣었을 때 기분하고 꼭 같을거니까."
허 재가 평소 허풍처럼 떠들던 팔뚝만한 잉어가 낚싯줄에 끌려오자 후배들은 신기한 듯 환호성을 올렸고 새로 입단한 막내들은 매운탕을 끓인다며 수선을 떨었다.
"요즘은 산란기라 붕어들의 입질이 심심찮지."
허 재의 권유에 낚싯대를 잡았던 양경민도 이젠 제법 강태공 티를 내며 한마디 거들었다.
시끄러워 붕어가 도망가겠다는 선배의 꾸지람에도 쉴새없이 조잘거리던 후배들은 새벽 2시를 넘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텐트 안으로 사라졌다.
서너시간쯤 흘렀을까.
물안개가 호수의 절반쯤 뒤덮은 새벽, 허 재의 입가에 혼잣말이 흘렀다.
"이맛에 밤을 꼬박 새지." [류성옥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