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산악인 엄홍길과 안나푸르나의 악연
기사입력 1999년 05월 06일 14시 43분
네팔 히말라야의 고봉 안나푸르나（8091m）.
어감도 여성스러운 안나푸르나는 현지어로 `풍요의 여신（女神）'이란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산등반가 엄홍길씨（39）에게 안나푸르나는 `악마의 산'이다.
엄씨가 처음 안나푸르나에 도전한 것은 10년 전인 89년.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 잘 나가던 엄홍길씨에게 안나푸르나는 눈과 강풍으로 첫 패배를 안겨줬다.
96년 2차 시도가 실패로 끝난 뒤 97년 3차시도때 안나푸르나는 그에게 치명타를 안긴다.
몇차례의 고산 등정을 함께하며 엄홍길씨의 오른팔 역할을 해온 고소 셀파 나티가 추락사한 것.
코 앞에서 절친한 친구가 죽는 장면을 목도한 엄씨는 깊은 실의에 빠졌다.
이듬해인 98년 4월 안나푸르나는 또 다시 찾아온 엄씨에게 직접 결정타를 날렸다.
정상을 불과 400m 남겨둔 지점에서 추락하는 셀파를 나꿔채다 발목 인대가 끊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것.
죽음의 하강을 시도한 끝에 목숨을 건진 엄씨는 4개월 이상 병원에 누워있어야했고 수술도 3차례나 받아야했다.
그러나 엄홍길씨는 굴하지 않고 또 다시 도전, 지난달 29일 실로 10년만에 악마의 봉우리 위에 서고 말았다.
개인 통산 1번째 8000m급 봉우리.
그러나 안나푸르나는 이번에도 제물을 요구했다.
동행한 여성산악인 지현옥씨（39）가 실종된 것.
엄씨는 현재 네팔 현지에 머물며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엄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안겨준 안나푸르나.
그 악연은 엄씨가 안나푸르나를 등정함으로써 끝났다.
그러나 엄씨는 남은 일생동안 안나푸르나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송철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