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유치막후비화] (9)FIFA부회장 당선
기사입력 1999년 05월 02일 14시 40분
FIFA 부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나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나의 경쟁자들은 모두 국가적인 후원을 받고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 보면 홀홀단신으로 선거전에 뛰어 든 셈이었다.
나는 94년 정초부터 AFC(아시아축구연맹)회원국을 순방하기 시작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FIFA 부회장이 되려면 우선 AFC 회원국의 사정을 잘 알아야 하고 또 자기네 나라를 직접 찾아 설득하면 효과가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1월과 2월에 걸쳐 대만을 시작으로 홍콩, 마카오, 중국, 파키스탄, 몰다이브등 13개국을 돌았고 선거전까지 32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북한을 빼고 모든 나라를 순방했다.
회원국 순방은 아시아 각국의 축구 현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짧은 기간에 여러나라를 찾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공부도 많이 되고 좋은 친구도 여럿 사귈 수 있었다.
나의 회원국 방문에는 오완건부회장과 최만립 당시 대한체육회 명예총무가 아시아 체육계의 폭 넓은 지면을 앞세워 번갈아가며 동행해 주었다.
최만립씨는 나와 두번째로 중동을 방문했을 때, 몸살과 설사로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다.
중동에서 후보가 두명이나 나왔지만 중동 국가도 찾아다녔다.
요르단에서는 최근에 후세인 국왕을 이어받아 요르단 왕위에 오른 압둘라 왕자가 특수부대사령관이면서 축구협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 찾아 왔다"면서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이어 그가 내준 벤츠차를 타고 사막길을 12시간이나 달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대통령의 장남인 우다이 후세인이 나라의 요직을 맡으면서 축구협회장도 겸하고 있었다.
우리는 영빈관에 머물면서 환대를 받았다.
4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며 그 강에서 난 잉어 요리로 저녁식사를 했다.
네팔을 방문하여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산맥도 보고,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바다가 있다는 몰 다이브 군도도 찾아갔다.
5월13일 드디어 말레이지아에서 총회가 열렸다.
이윽고 투표가 시작되고 개표가 있었다.
그 결과 나와 쿠웨이트의 쉐이크 아마드가 똑같이 10표, 카타르의 함맘이 8표, 일본의 무라타는 겨우 2표였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투표에 들어가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때 소동이 일어났다.
한 검표위원이 이의를 제기하고 또 다른 검표위원도 계표가 잘못되었으며, 내표가 한표 더 있다고 말했다.
쿠웨이트측이 항위하는등 장내가 소란 해지자, 검표 위원은 "나는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실수할 수도 있다"며 검표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했다.
즉시 벨라판 사무총장이 "착오가 생긴 한표는 닥터 정의 것"이라며 내가 11표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모두가 고개를 흔들던 FIFA부회장 선거.
이 고비를 넘김으로써 우리는 월드컵 유치를 향해 결정적인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