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막후비화] (7)로고 즉석 도안
기사입력 1999년 04월 25일 15시 17분
`도하의 기적'이 있은 두달후인 93년 12월19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미국 월드컵 축구 조 추첨식이 열렸다.
나와 이홍구 부의장은 분위기를 파악할 겸 조 추첨식에 첨석하기로 했다.
조 추첨식은 그 자체가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하나의 거대한 행사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호텔방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거창하게 치러진 조 추점식이 끝나고 1000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만찬이 열렸다.
우리 두 사람은 문간에 겨우 자리 잡았다.
음식을 나르는 웨이터들이 드나들 때마다 찬바람이 들어오는 `문지방'근처였다.
반면 일본 축구협회의 무라타 부회장은 FIFA 월드컵 조직위원의 자격으로 기모노를 입은 부인을 대동하고 메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이때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FIFA의 조직을 뚫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해 들어서도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당시 문체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연두 업무 추진 보고서에 월드컵 유치 항목이 빠져있을 정도였다.
당시 축구협회 출입기자가 알려 주어서 그런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우리로서는 충격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94년 1월18일 유치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사회 전분야의 인사를 발기인으로 위촉하여 거국적인 단체가 되도록 했다.
지금은 낯익은 유치위원회 로고는 발기인대회를 앞두고 이홍구 위원장이 도안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종이를 꺼내더니 마치 오랫동안 구상해 온 것처럼 2002를 쓰윽 쓰고는 가운데 0에다가 축구공과 태극 마크를 그려 넣었다.
이 기본안을 토대로 5대륙을 상징하는 색깔을 밑에 넣어 유치위원회 로고를 만들었다.
형식적으로 유치위원회가 겨우 출범했으나 인원이나 예산이 하나도 없었다.
당장 사무실 구할 돈도 없어서 유치위원회 사무실은 유치위 발족 후 2개월만에 마련됐을 정도였다.
당시 정부의 한 관계자는 "2002년 월드컵 추진 사업에 대해 정부가 지원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유치사업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으며, 둘째로는 축구협회장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부에서 지원을 꺼려하자 이 위원장은 "처음부터 정부 돈이 어디 있느냐? 국민이 낸 세금은 국민이 주인인데 국민들에게 유치활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국민투표로 물어보자"며 설득했다고 한다.
초대 사무총장으로는 당시 주카나다 대사였던 박건우씨가, 이홍구 위원장과 한승주 당시 외무 장관 등의 강력한 추천으로 어렵게 발탁 되었다.
박총장은 초창기의 유치위 살림을 도맡아 고생을 많이 했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정부 당국자와 일부체육계 인사들의 냉대와 무관심이었다고 한다.
그는 3개월만에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는 말을 남기고 외무차관으로 영전되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