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장외] 권준헌 존재 알린 소중한 홈런
기사입력 1999년 03월 25일 13시 57분
주위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았었다.
이미 각본은 짜여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현대 `미운오리' 3루수 권준헌（28）은 야구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것으로 여겼다.
지난해 쿨바에게 3루자리를 내줄때만 해도 내년을 기약할 순진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두번째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다시 3루요원 카날리를 뽑자 권준헌은 그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라는 야속함도 있었구요."
자칫 그대로 포기해버릴 지도 몰랐던 위기였지만 `심성 착한' 권준헌은 오히려 엉뚱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미국 플로리다에서 처음 만난 `천적' 카날리를 물심양면 도와준 것이다.
야간훈련때는 자진해서 카날리의 토스배팅를 도와줬고, 쉬는 시간엔 바로 옆에서 말동무가 됐다.
"카날리가 나보다 낫다면 뭔가 배우고 싶었어요."
비록 시범경기지만 권준헌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카날리가 갑작스런 배 근육통으로 최소한 5일 정도 정상훈련을 치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잘하면 시즌초반 현대 핫코너 주인은 권준헌이 될 수도 있다.
권준헌은 지난 23일 LG전에서 3회말 시원스런 좌월 3점홈런을 때려냈다.
어쩌다 때린 한방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권준헌에겐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준 소중한 홈런이었다.
겨우내 김용철 타격코치와 함께 타이밍 잡는 훈련을 거듭한 결과 타구의 질이 매우 좋아졌다.
김재박감독도 "겨울훈련 동안 꽤나 열심히 하더니만…"이라며 슬며시 잇몸을 드러낸다.
[김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