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호러마니아 (2)
기사입력 1999년 03월 24일 15시 06분
난 탈출구를 찾고 싶었지.
그녀와 내가 근 5년 동안 돈을 모아 사들인 이 단칸방에서 덩그러니 놓여있는 옷장, 그리고 맞은 편에 보이는 중고 텔레비전과 VTR.
그래, 시원한 액션 영화라도 보고 잠깐동안이나마 그 일을 잊을 수 있다면 하늘로 먼저 떠나버린 아내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난 즉시 비디오가게를 찾았지.
최신 액션물을 찾아 둘러보기 시작했어.
`볼케이노' `레릭' `데이라잇' `D.N.A' 같은 액션물들이 꽂혀 있었지만 하나같이 다 대여중이더구만. 그날이 아마도 일요일이었나 봐.
그래서 그냥 가려고 문을 나서던 순간, 출입구로 달려오던 어떤 청년과 부딪쳤어. 키가 작고 약간 통통하며 머리가 짧은….
눈매가 매서운 느낌을 주는 그 청년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를 한 뒤 손에 들고 있던 비디오 테이프를 주인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어.
난 나가려다가 뒤로 돌아 그 청년이 반납하러 온 비디오테이프 제목을 보았지.
`이블 데드'.
주인은 그 청년과 친한 듯 둘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어.
"아저씨. `이블 데드' 원판은 구할 수 없나요?"
청년이 이렇게 묻자 비디오가게 주인은 무표정하게 볼펜을 딱딱거리며 아주 쉽게 대답했지.
"뭐…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좀 들어. 그리고 누가 그런 잔인한 걸 빌려다 보겠니? 너같은 마니아를 빼곤…."
가게 주인의 말을 들은 청년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다른 비디오 테이프 한개를 집어 빌리곤 가게를 나갔지.
나는 호기심에 그 청년이 반납한 `이블 데드'를 빌려들고 집으로 갔지.
이건 장난이 아니었어！
마구 몰아쳐 오는 형체 없는 악령이 내 숨을 턱턱 막히게 하고 싸구려 티가 풀풀 나는 시체 연기의 대역 배우들도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거였어.
특히나 그 삽자루로 좀비로 변한 애인의 목을 사정없이 날려버리는 애쉬 역의 브루스 캠벨은 정말 화끈하더군.
1박 2일의 대여기간을 무시한 채 난 몇 번이고 감아서 다시 보았지.
그리고 이틀이나 지난 후에 비디오 가게에 들렀을 때, 나는 그 작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그 청년을 다시 볼 수 있었지.
그 청년은 공포 영화에 깊이 빠진 호러 영화광인 것 같았어.
그가 반납하고 다시 내가 빌린 영화들은 모두가 호러 영화들이었으니까.
나도 그처럼 점점 호러에 길들여져 갔어.
특히나 죽은 사람이 살아나 소동을 벌이는 `리빙 데드' 시리즈나 `헬 레이저' 시리즈, `리애니메이터'나 `공포의 묘지' 시리즈 등은 나를 더욱 더 열광하게 만들었지.
그리고 허황될 지는 몰라도 죽은 아내를 살릴 수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지.
난 거의 매일 두편씩을 빌려와서 밤새도록 보고 또 보고 했지.
그리고 비디오 가게에서 그 청년을 만나는 횟수도 점점 늘어갔어. 어느 날이었지.＜계속＞
글·오종석(아이디:메탈티스)/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