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조로증 대니심 사망' 통곡
기사입력 1999년 03월 19일 13시 19분
"약속을 못지켜 미안하다."
대니 심의 얼굴을 떠올리던 박찬호（26·LA다저스）의 눈가에 물기가 젖었다.
병이 나으면 친구들을 모두 불러 새로 장만한 집에서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대니와 굳게 약속했는데….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박찬호는 18일（이하 한국시간） 충격적인 소식에 입을 열줄 몰랐다.
평소에 애정을 갖고 보살피던 교포 소년 대니 심군（18）이 이날 조로증 합병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LA아동병원에서 갑자기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한 것.
조로병 환자이던 대니와 박찬호의 만남은 97년 6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찬호는 자신의 열성팬이라며 다저스타디움을 찾은 한 소년을 만나는 순간 망연자실했다.
16세라고 들었는데 다섯살 소년의 체구에 모진 삶을 살아온 노인의 얼굴을 한 대니와 악수를 하는 것만으로도 소년이 부서져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감독과 선수들에게 일일히 소개를 하고 즉석에서 사인한 다저스 모자를 씌워주면서 `작은 대니'와 `거구 박찬호'의 우정은 시작됐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니를 불렀고, 최근 집들이에도 대니와 가족을 초대했다.
작년말 한국을 방문, 한 TV에 출연해서는 대니의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려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의학적으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대니가 이렇게 갑자기 떠날줄을 몰랐다는 박찬호는 작고 부서질듯한 체구에도 늘 반짝이던 눈으로 대학 진학과 미래를 이야기하던 대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작년 7월 박찬호의 병상 방문을 받고는 뛸듯이 기뻐했고,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마다 100달러씩의 기부를 발표하는 행사때 찬호 오빠의 손을 잡고 다저스타디움의 잔디를 밟았던 강수련양（15）.
그런 수련이도 지난해 12월 골수이식 수술후 후유증으로 일찍 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반드시 성공하고 싶은 큰 이유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기 때문'이라고 늘 말하던 박찬호, 어린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머리라도 쓰다듬던 박찬호.
3개월 사이에 자신과의 소중한 인연을 가슴에 묻고 떠나간 두 어린 친구들에게 99년 시즌을 바치겠다는 박찬호의 눈물에는 진한 인간미와 함께 결연한 각오가 스며있었다.
[베로비치（미 플로리다주）＝민훈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