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황지우 -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기사입력 1999년 03월 18일 15시 37분
광장은 비었다. 젊은이들의 혼잡스런 유행과 한탕주의에 빠진 보따리 장사꾼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1999년, 세기말의 한국.
시인 황지우가 돌아왔다. 아름다운 폐인이 되어. 시집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를 통해 오랜만에 그의 모습을 본다. 그 착잡합. 80년대 가열찬 시의 시대를 기억하는 인문주의자들은 황지우의 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리소문없이 덮쳐온 지금 이곳 세기말의 절망감에 소스라쳐 놀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꿈은 실려나가고, 세상은 지금 오리무중이다. 고만고만하게 자리잡고 제 살길 찾아간 80년대의 전위들. 그들이 더이상 불온한 시를 쓰지 않고, 연극을 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긴장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손바닥만한 권위에 연연한다면, 시인 박남철의 말마따나 그들은 이제 중견(中犬)이다.
80년대 전위시인 황지우가 99년 막장 폐인의 모습으로 흐린 주점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는 여기서 끝까지 당당한 인문주의자의 모습을 본다. 그의 눈길이 비록 비관적이고 그의 술잔이 허무의 포즈를 담고 있다 할지라도, 그는 이 혼잡스러운 세상 속에 여전히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다. 결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포기하지 않는 인문주의자의 아름다운 시대복무. 황지우의 시에는 분명 그런 긴장이 있다.
[이윤택/시인．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