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어설픈 1인자 행세는 이제 그만
기사입력 1999년 03월 08일 15시 33분
요즘 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강감독은 감독이요. 제작자요."
행간의 의미를 따져보면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란 물음이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감독이죠"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감독이 제작자보다 뭔가 격이 있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알량한 생각 때문이다.
정말 우리는 너, 나를 막론하고 정체불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수인지 배우인지, 경영인인지 정치가인지, 학계 정계 재계 문화예술계를 막론하고 뚜렷한 자기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 흔치 않다.
그러기에 누가 그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임을 판단하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1인자(?)들이 도처에 아무때나 설쳐대는 이유는 뭘까.
이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면서, 급하게 만들어진 전문가들과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잡아 당기기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애매한 일등생만 양산하고 있다.
주위에는 그로 하여금 그 자리를 지키도록 하기는 커녕 언제 어느 곳에 누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게 만드는 사악한 여론만이 남기 십상이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나부터 정신을 빨리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진정 내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철저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래서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에서, 내가 몸을 담고 싶어하는 곳에서 절대 필요없는 존재라면 과감히 떠나려고 한다.
다 버리고서라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없으면 안되는 곳으로 가려 한다.
그런 내모습이 좋게 보여질 때 그곳에서 진정 뭔가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 다같이 지금의 자기모습을 제대로 한번 살펴보자.
누가 누구를 나무라고, 누가 누구를 인정하겠다는 건지 곰곰히 생각해 보자.
나부터 나를 알고, 내가 나를 나무랄 때 보다 풍성한 지역사회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언제 특정분야에 입문했는지, 무슨 일로 그 분야에 관련이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특정분야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 다수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내걱정부터 합시다."
[강우석(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