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플라리스 랩소디 (5)
기사입력 1999년 03월 05일 15시 24분
라스 법무대신은 왕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줄 수 없었다. 바로 그 때 세 개의 마스트 위에서 길게 꼬리를 끄는 독특한 고함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던 것이다.
"세일 호－！(Sail ho:돛대가 보인다, 혹은 함선 발견)
"세일 호－！"
마스트 위 감시대에 있던 선원들이었다. 라스 법무대신이 고개를 돌리자 멀리 이물 쪽에 있던 갑판장이 두 손을 모으고 고함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 종류가 뭐야?"
"이물, 바람 불어가는 쪽 2마일！ 종류는…."
까마득한 감시대 위에서 들려오던 선원들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침묵했다. 갑판장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감시대！ 뭐야?"
갑판장의 재촉이 있고서도 한참 지난 후, 마스트 위에서는 숨막히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오, 신이여！ 자유, 자유호！ 노스윈드다앗！"
라스 법무대신은 경악에 찬, 부릅뜬 눈으로 마스트 위를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 곳에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채 하얗게 질려있는 율리아나 왕녀의 얼굴이 있었다.
뒷갑판의 선교에 앉아있던 엘리엇 선장은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수평선 위로 떠오른 여덟 개의 돛을 바라보았다.
"오오, 맙소사！"
갑판 위를 미친 듯이 달리던 선원들이나 제자리에 굳어버린 채 부지런히 성호를 긋고 있던 선원들도 그 장면에선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해운국 카밀카르의 억세고 거친 선원들도 여덟 개의 돛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장면에는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덟 개라는 숫자 때문은 아니다. 그 돛대가 동시에 수평선 위로 나타났다는 것은 그들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뱃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여덟 척의 배들로 하여금 뱃머리를 나란히 하여 항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 함대는 제국의 공적 1호 노스윈드의 함대인 것이다.
레보스호의 선원들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엘리엇 선장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선원들 사이에서 고함소리가 튀어나왔다.
"선수 돌려！ 배 돌리라고！"
그 고함소리보다 먼저 공포에 질린 조타수가 타륜을 세차게 돌려버렸다.
콰과가가가가！ 선체가 격심한 진동을 일으켰다. 배가 옆으로 크게 기울며 갑판 위의 선원들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뱃전 가까이 있던 선원 하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바다로 떨어졌다.
엘리엇 선장은 무시무시한 욕지거리를 뱉어냈지만, 그 역시 나동그라지기 않기 위해서 선교의 난간을 부여잡아야 했다. 난간에 매달린 채 엘리엇 선장은 조타수에게 죽일 듯한 시선을 쏘아보냈다.
"네 이놈！ 이 튀겨죽일 놈！ 타륜 제자리로 돌리지 못해！"
넋이 나가버린 조타수는 선장의 명령에 화들짝 놀라면서 타륜을 부여잡았다. 선장은 다시 갑판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질렀다.
"네놈들이 누구냐！ 네놈들이 누구냐！"
선원들이 혼란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엘리엇 선장은 몇번씩 고함을 질러야 했다. 선원들은 얼빠진 얼굴로 선교를 바라보았고, 그런 선원들 위로 엘리엇 선장의 추상 같은 외침이 퍼부어졌다.
"네놈들이 그러고도 카밀카르의 뱃놈들이냐！ 이 찢어죽일 놈들, 내 말을 들어라！ 갑판장！ 종범 모두 접는다. 종범 모두 접는다！ 노예장！ 노예장！ 최고 전투속도로 우회 기동, 우회 기동！"
선원들은 그제서야 우르르 돛대를 향해 달려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