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다빈치의 눈물 (5)
기사입력 1999년 02월 24일 14시 18분
'처음 보는 여잔데 누굴까?'
영신이 돌아본 곳에는 가로등 불빛이 마치 성인(聖人)의 후광(後光)처럼 비치는 곳에 첫눈에 봐도 늘씬해 보이는 묘령의 여인이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서 있었다.
영신은 낯선 여인을 보면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때서야 영신은 자신이 몸을 파는 여자들이 모여있는 사창가로 들어선 것을 알게 됐다.
"후후… 요즘 장사가 안되긴 안되는가 보군. 나 같은 미친 놈까지 손님으로 받으려는 걸 보면…."
영신의 비아냥거림이 가득 담긴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오히려 영신의 팔을 잡으며 가까이 다가섰다.
"아이… 오빠, 그러지 말고 잠깐 쉬었다가 가！ 내가 잘해줄게…."
여자가 교태를 부리며 다가서자 영신은 경멸과 측은함이 뒤섞인 눈으로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데 한밤중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 어딘가 이상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얼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왠지 영신에게는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내가 모르는 여자일텐데…. 어디서 봤더라?'
영신은 잠시 기억을 더듬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고, 그 순간 영신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헉… 이럴 수가 …당신은 내 그림 속에…?"
그랬다.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검은 선글라스를 낀 여자의 얼굴은 영신이 아직도 완성시키지 못한 채 괴로워하고 있던 그림 속의 여자의 얼굴을 쏙 빼닮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림 속의 여인이 아직 눈이 완성되지 못해서 동그란 윤곽만 가지고 있듯이, 영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이 여자도 눈을 검은 선글라스로 가리고 있었다.
영신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한참만에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저 …미안하지만 그 선글라스를 한번만 벗어볼 수 있나요?"
영신의 갑작스런 질문에 여자는 잠시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 대꾸했다.
"그건…? 왜 그러시는 거죠? 제 선글라스가 불쾌하신 가요?"
"아 아닙니다.
…실은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고 제겐 모델이 될 만한 여자의 눈이 필요한데 그게 당신인 듯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눈을 한번만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제게 어떤 영감이 떠오를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영신은 끝이 없는 동굴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 여자는 내 작업을 끝내라는 하늘의 계시야. 마지막 희망이고…, 절대로 놓칠 수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을 마친 영신은 가슴 속에서 미칠 것처럼 치솟아 오르는 기쁨을 겨우 억누르며 선글라스의 여인을 애원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선글라스의 여인은 그런 영신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진 몰라도 전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제 눈은 누구의 모델이 될 정도로 아름답지 않아요. 실례했어요."
말을 마친 여자는 당황스런 기색으로 황급히 등을 돌렸고 그 순간 영신은 그녀의 팔을 억세게 잡아 쥐었다.
"이, 이봐요.
당신의 눈이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냥 그 선글라스를 한번만 벗어주면…, 그렇게만 해주면 뭔가 영감이 떠오를 겁니다.
대가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제발 한번만 내 부탁을 들어줘요."
[계속]
글·송강민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