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인터넷 E-메일에 한국식 영어 난무
기사입력 1999년 02월 04일 15시 00분
`NAYA, JAL JI NAE NI?'(나야, 잘 지내니?)
요즘 인터넷상에 난데없는 `비문'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외국으로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떠난 학생과 국내의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E-메일의 내용이 이해할 수 없는 영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유학생들의 컴퓨터에는 대부분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아 국내에서 한글로 쓴 메일을 보내면 기계가 인식을 못하므로 반드시 영문으로 보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여기에서 나온 게 바로 이 기상천외한 비문이다.
영문으로 편지를 쓰기가 귀찮거나 자신이 없는 학생들이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옮겨 적고 있는 것이다.
`MIGUK'(미국), `HANGUK'(한국)과 같은 식이다.
물론 이 방법을 택하면 하고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다.
이런 저런 주변 얘기들은 물론 한국어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詩)까지도 `영문'으로 전해줄 수 있다.
그러니 `골 때린다'와 같은 속어나 `왕따'나 `번섹' 같은 은어 정도는 고민거리에 끼지도 못한다.
경원대 이기택군(24)은 "미국 뉴욕에서 어학연수중인 친구와 자주 E-메일을 교환하는데 간단한 인사말 외에는 모두 한국식 영어를 쓰고 있다"면서 "영작하느라 머리굴릴 필요도 없고 또 빨라서 좋다"고 말했다.
대학생들 사이에 인터넷 비문이 유행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라면 메일 내용이 길어졌다는 점.
종전 영문으로 적을 때는 대부분 인사말만 간단히들 썼으나 요즘엔 하고 싶은 말을 다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비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쓰기 편하다고 아무말이나 마구 쓰고, 친하다고 해서 입에 담기조차 힘든 음담패설까지 예사로 늘어놓다 보니 메일의 내용이 갈수록 저질스러워지고 있다는 것.
한양대 박범수군(24)은 "영문을 한글식으로 표기하면 참 수월하겠지만 그게 버릇이 되다보면 나중엔 자기도 모르게 영작문을 기피하게 될 것"이라며 "인터넷 메일도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환 명예기자(한국외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