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미녀의 얼굴 (5)
기사입력 1999년 02월 01일 14시 32분
죽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농담도 아니고, 불과 어제 아침까지도 보았던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다가오면서 수다를 떨었다.
"난 그게 세영인 줄 알고 무척 걱정했다구."
"예? 뭐가요?"
세영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에? 몰라서 물어? 불난 거 말야, 공장에…."
"예? 공장에요? 불이 났어요?"
순간 번갯불이 뒷머리를 훑은 것처럼 섬뜩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아, 여태 몰랐어? 어젯밤에 세영이 다니는 공장에 불이 났었어. 막 소방차가 출동하고 난리가 아니었다구. 그때가 한시쯤 됐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한밤중에 그게 뭔 난리였는지, 원！ 아침에 들어보니까, 거기서 누가 휘발유를 몸에 붓고 자살을 했다는 거 같던데……."
"예? 누가요?"
그렇게 묻는 세영의 얼굴은 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글쎄, 나도 모르지. 그러니까 혹시 그게 세영인가, 하고 걱정했던 거지. 에구, 손님 왔네. 나중에 봐！"
한참 수다를 떨던 아줌마는 다시 호들갑을 떨면서 가게로 달려갔다.
"세상에, 누가……."
그녀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자살이라니, 왜 자살을? 그녀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왜 자살을? 그렇게 묻는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경제가 붕괴된 시대에 늘어나는 실업자들. 그런 가운데 장애인들은 어쩌란 말인가?
정보신문을 가지러 거리에 나왔던 그녀는 자신의 목적도 까맣게 잊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5-
"얘가 왜 안 오는 거지?"
세영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이미 열 시가 넘어 있었다.
"이렇게 늦은 적이 없는데…… 어디 갈 데도 없을 거고……."
사실이 그랬다. 몸이 불편한 선예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몸이 문제가 아니었다. 돈만 많다면 어딘들 못가랴. 하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도 아니었다.
정오나 되어서야 출근해서 오후 여섯시까지 근무하는 선예. 몇푼 안되는 보수.
퇴근한 선예는 다른 곳에 들를 일도 없이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차비 한 푼을 아끼기 위해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30분을 넘게 걷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집에 돌아오는 시각은 7시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오늘은…….
"얘가 도대체……."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숙였을 때, 문득 방바닥에 놓인 밥상이 눈에 들어왔다.
초라한 밥상 위에는 역시 초라한 음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초라한, 너무나도 초라한…….
자꾸 되뇌이다 보니 문득 그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단어가 있었나? 예전에는 그런 단어를 알기나 했나?
문득 그녀의 시선이 벽에 걸린 낡은 액자를 향해 날아갔다.
액자 안에서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도 함께 웃고 있었다.
대학 졸업식 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는 사진에서 언뜻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모피코트를 입고 아버지는 고급 오버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곧 시선은 그 옆에 걸린 액자를 향해 옮겨갔다. 거기에도 아름다움이 있었다. 화려함이 있었다.
늘씬한 몸매에 비싼 스키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 빨간 스키복이 하얀 눈에 대비되어 더욱 강렬하게 보였다. 함께 놀러간 남자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었다.
잘 나가던 시절에…. 잘 나간다? 그랬다.
그 단어가 훨씬 가슴에 닿던 시절에, 그런데 이제는…….
그때, 그때 그 사고！
글·박무정(아이디:MirSin)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