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외톨이 전화'에 접수된 따돌림 사례 공개
기사입력 1999년 01월 29일 15시 31분
"친구 누나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돌아버릴 것만 같아요."
집단 따돌림을 받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외톨이 전화'(02－7909－114) 상담원 이은정씨는 28일 한 남학생과 전화상담을 하던 중 말문을 잃었다.
고교생인 김모군은 한달전 같은 반에서 가장 힘이 센 친구의 강압에 못이겨 그 친구 집에 갔다고 한다.
집에는 친구의 누나라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있었고 혼자 남겨진 김군은 그 여자로부터 "옷을 벗지 않으면 동생을 시켜 더 괴롭히겠다"는 협박을 받고 허리띠를 풀렀다.
이날 이후 김군은 다섯차례 더 그 누나에게 불려갔다고.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받는 이른바 `왕따'.
`한국 청년의 전화'가 지난 22일 개설한 이 전화에는 김군처럼 고통을 받는 중고생과 학부모들의 상담전화가 하루에 10여차례 걸려오고 있다.
친구와의 사소한 오해로 시작된 갈등이 `왕따'로 발전한 여고생, `왕따'와 어울렸다는 이유로 덩달아 `왕따'로 몰린 남학생, 초등학생 아들이 교사로부터 창피를 당한 학부모 등등.
가톨릭대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는 이씨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충격적인 전화도 많다"며 "따돌림 현상이 과거에는 일시적으로 나타났지만 요즘은 지속적이고 방법도 교묘하다"고 말했다.
여고 3년생인 이모양은 불량친구와 거리를 두는 바람에 또다른 친구가 애꿎게 성폭행을 당해 이 전화를 찾았다.
소위 `놀던 아이'였던 이양은 담임선생님의 소개로 새로운 친구 2명을 사귀자 한패였던 친구들이 남학생들을 데려와 이양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했다는 것.
이양은 이때의 충격으로 편집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며 울먹였다.
또 반에서 1∼2등을 다퉈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한 중학생은 친구들이 학기 내내 말도 안붙이는 등 외면을 하자 의도적으로 시험을 엉망으로 보았다고 한다.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지면 친구들의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왕따'의 가해자는 학생만이 아니었다.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김모씨는 아들이 담임으로부터 교묘하게 따돌림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김씨가 학교를 찾아가지 않자 이 교사는 수업시간에 "만일 ××의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면 여러분들은 어떡하겠습니까"하는 식으로 예를 들어가며 자기 아들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한국 청년의 전화 황인국 사무처장은 "따돌림을 받는 학생들은 주로 내성적"이라면서 "부모 스스로가 `내 자식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는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