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눈 (3)
기사입력 1999년 01월 19일 14시 37분
곧 이어 누가 불렀는지 경찰차와 병원 구급차가 잇따라 현장에 도착했다.
사고를 낸 그 남자는 한쪽으로 차를 대놓고 경찰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까 김호진을 미친 사람 취급했던 그 사람도 목격자로서 그들과 함께 남았다. 이후 사건현장은 곧 정리되었고,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그는 점심도 하지않고 그냥 사무실로 돌아왔다.
`도대체 나만 보았다는 그 할머니는 누구인가?'
김호진은 스스로 헛 것을 보았다고 위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할머니의 인상은 그의 머리속에 강하게 각인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쁜 일과가 그 기억의 잔해를 금방 지워주었다. 그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는 다시 오후 업무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점심을 못 먹은 탓인지 배가 몹시 고팠지만 그는 참기로 했다.
그는 오늘 야근이었다. 그래서 모두 퇴근하면 그때 잠깐 시간을 내어 저녁을 겸해 먹으리라 생각했다. 점심을 굶은 탓인지 저녁에 그는 오랫만에 과식을 했다.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사무실은 무척 조용했다. 그는 오히려 그런 고요함을 좋아했다.
야간업무에 들어가기 전 그는 담배 한개피를 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가지고 들어가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9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집에 가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한 그는 하던 일을 마치고 귀가하기로 마음먹었다.
한참동안 일에 정신이 팔려있던 그에게 잠깐 그의 관심을 빼앗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누군가 노크를 하고는 곧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직, 퇴근 안하셨네요?"
"예. 할 일이 좀 있어서요."
빌딩 경비 아저씨였다.
"어휴. 그래도 그렇지. 벌써. 10시가 넘었어요. 일이 그렇게도 좋으세요?"
"예? 벌써…. 10시가 넘었어요? 어휴. 몰랐네요. 일이요? 좋죠, 뭐. 하하."
그가 멋적게 웃자 경비 아저씨도 따라 웃었다. 쥐죽은 듯이 고요하던 사무실이 단숨에 시끌시끌 해지는 것 같았다.
그순간 호진은 한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인지 경비 아저씨는 꼬마를 등에 업고 있었다.
"아저씨. …자제분인가 봐요?
"예? 무슨…?"
"등에 업고 있는 꼬마 애 말이에요."
"누가 누굴 등에 업고 있어요?"
"후후. 장난하지 마시고요. 지금 아저씨 등에 업혀 있는 꼬마가 아저씨 아이 아니냐구요?"
"예? 무슨 말하는 거예요?"
`뭐야, 이건?'
김호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 그의 눈엔 경비아저씨의 등에 꼬마 아이가 업혀 있고, 그 꼬마는
혹 아저씨에게서 떨어질까 자기 팔로 아저씨의 목을 꽉 휘어감고 있었다.
꼬마는 웃고 있었다. 분명 호진을 보고 웃고 있었다.
하지만 경비 아저씨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호진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곤 좀 쉬엄 쉬엄 하셔야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고는 곧 뒤돌아 문을 닫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꼬마 아이는 뒤돌아 호진을 보고 웃고 있었다.
호진이 하던 일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경비실 앞에서 호진은 다시 한번 경비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 꼬마아이는 보이질 않았다.
그는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환상에 사로잡힌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집으로 향했다.＜계속＞
글 남규진(컴퓨터딜러)
/하이텔 미즐모(미스터리를 즐기는 모임) /go sg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