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의중광] (중) 영화 '변강쇠' 출연 불발
기사입력 1999년 01월 14일 14시 26분
백담사는 밤 9시에 잠들고, 새벽 3시면 깬다.
법당도, 탑도, 스님들도 다.
어겨서도 안 되고, 어길 수도 없는 절집 규칙이다.
여기서도 중광스님은 예외다.
최고 어른인 회주스님도, 주지인 득우스님도, 심지어 부처님까지도 그를 틀 속에 가두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잘난 체 하자는 게 아니다.
작품활동에는 시간이 따로 없는 데다 유독 새벽작업이 많아서일 뿐이다.
공양도 거의 안 한다.
보통 하루 한 끼.
아침은 건너 뛴 채 낮참이나 저녁 때 한 끼 때운다.
대신 술담배 없이는 못 산다.
"술? 그럼, 마시지. 그런데 내 술마시는 법은 좀 달라. 관법이야. 입에는 대지 않고 술병을 흔들며 눈으로 마시지."
"담배? 많이 필 때는 하루 열 갑이야. 그런데 아직 한 대도 제대로 안 피워 봤어. 다 `뻐끔담배'거든. 속았지? 그래도 작품구상엔 도움이 돼."
담배는 가느다란 `에쎄'만 핀다.
특별한 맛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냥이다.
생나무를 깎아 만든 `앉은뱅이 책상' 옆에 수북이 쌓인 담배는 스님이 벌이는 작업의 무게를 단박에 느끼게 했다.
사실 스님은 30년 전부터 백담사를 그려왔다.
설악산 꼭대기의 봉정암에 있을 때다.
그 절절한 그리움은 85년에 발표한 시집 `허튼소리上'의 `내가 마지막 돌아갈 고향'이란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내가 마지막 돌아갈 고향이로다/ 일년에 한 번쯤 못 보면 몸살이 난다/ 내설악 백담사앞 시냇물 흐르는/ 물소리 차랑차랑….'
그런데 30년을 그려 마침내 몸담은 백담사가 되레 불편할 때도 있다.
유명세 탓이다.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눠야 하고, 사인도 해줘야 하고, 사진도 같이 찍어줘야 하는 것이다.
보행정진(步行精進．걸어다니며 수행을 함)에 지장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도 그는 백담사다.
"이제 다신 안 내려가. 죽어서 화장막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신 `깜짝 외도'는 예외로 치기로 했다.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90년)로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고, `노란 옥시크린'을 통해 CF계에까지 진출했던 그가 아니던가.
"영화든 CF든 시간이 허락하면 할거야. 돈 준다는데 싫다는 놈 있어? 근데 말이야, 잠시 일하는 데도 돈을 많이 주니까 재미나더라구."
아닌 게 아니라 스님에겐 요즘도 CF제의가 들어온다.
얼마전엔 삼성과 대우로부터 거푸 제의를 받았으나 작품활동 때문에 거절했다.
"내가 변강쇠 될 뻔했던 사실 알아? `청송으로 가는 길' 찍고 나서 `변강쇠' 찍자고 제의가 들어왔었지. 주위에서 하도 말리는 바람에 못했어. 그게 내 인생 유일의 실패야. 한 칠팔년 전만해도 몸이 좋았거든."
스님은 달마가 완성된 뒤 영화나 CF제의가 들어오면 `걸레'를 휘날리며 득달같이 설악산을 뛰어내려갈 지도 모른다. X계속〉
[백담사＝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