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스토커(3)
기사입력 1999년 01월 14일 14시 26분
유리의 사건을 맡은 형사들이 유리의 소지품에서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후후. 대단하더군. 그 일기장은 첫장부터 끝장까지 모두 다 희진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였더군.
하지만 고등학교때 둘은 그리 친하게 지낸 사이가 아니었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나 봐.
유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희진을 영영 못볼까봐 희진과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지원을 하게 된 것이었지.
물론 희진은 알 수 없었지. 그냥 동창생이 같은 과에 다니니까 반갑기만
할 따름이었겠지.
그것이 유리가 만들어낸 극본인지는 몰랐던 거야.
신입생 초기에는 조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나 봐. 희진에게 아는 사람이라곤 오직 유리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희진의 주위에 남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자, 유리의 존재는 차츰 희진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 것이야.
'동성애'는 우리나라에선 좀 이상하게 취급받는 경우가 있잖아?
유리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단 한번도 희진 앞에 나설 수가 없었대.
물론 말을 걸어볼 용기도 없었고, 다만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지.
유리는 차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희진에게 화가 났던 모양이야. 또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증오로 바뀌었겠지. 그리고 '집착'을 하게 된 것이지.
희진은 아무 것도 모른채 당해야 했고.
하지만 유리는 이제 죽고 없으니까. 모든 것은 거기서 끝이 난 거야.
아！ 근데 유리는 왜 죽은 거냐고?
처음엔 자살인 줄만 알았지.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하나하나 의문이 풀리면서 범인이 밝혀지더군.
누구였냐구? 놀라지 말게나. 후후. 바로 재중이었어.
재중이 왜 유리를 죽였냐구?
나도 처음엔 그것에 대해 의문점을 많이 느꼈어.
재중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얘기했지?
그 주인공이 유리였던 거야.
하지만 희진이 유리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았듯 유리는 재중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나 봐.
재중은 유리를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무참히 짓밟히는 자신의 사랑을 바라만 보고는 있을 수 없었지. 그래서 그 사랑에 점점 더 집착을 하게 되었나 봐.
알고 봤더니 재중이도 '스토커'라 할 수 있더군.
유리네 집 전화 내역서를 뽑아본 형사들이 그러던대 하루에 유리네로 전화가 수십통씩 온 것이야.
근데 발신지는 모두 재중네 집이었고, 통화시간은 10초를 넘기지
않은 것이었어. 그 정도면 자네도 추측할 수 있겠지?
그리고 형사들이 유리 방에서 수백통의 편지와 꽃다발, 수많은 선물들,
그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
물론 모든 편지와 메모엔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았어.
다만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런 식이었지. 원래 스토커는 자신을 밝히지 않으니까.
그렇게 잘못된 사랑을 하던 재중이 어느 날인가 용기를 내어 유리를 만나게
되었나 봐. 결판을 짓고 싶었는 지도 몰랐지.
유리를 만나게 된 재중은 모든 것을 고백했지.
그동안 유리가 받은 수많은 편지들과 꽃다발 그리고 선물들을 보낸 주인공이 자신이란 것을….
하지만 유리는 그런 것들에 관심조차 없던 것이었어. 사랑하는 희진이 있었잖아.
유리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재중은 참을 수 없었겠지. 그래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겠지. 또 그것이 스토킹의 결말일테고….
그래서 재중은 지금 어떻게 되었냐구?
원래는 감옥에 있어야겠지? 후후. 근데 아닌 걸. 감옥에 없어.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도 없지. 왜냐면 재중도 죽었거든.
재중은 또 왜 죽었냐구?
후후. 여태껏 자네처럼 그놈도 내 사랑을 받아주질 않더라고.
자네도 조심하게나！[제13화 끝]
글 남규진[컴퓨터딜러]
/하이텔 미즐모(미스터리를 즐기는 모임)/go sg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