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악마의 유혹'에 부드러워진 남자들
기사입력 1999년 01월 06일 16시 29분
평소에는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던 사람이 아내한테서 걸려온 전화에는 직장 상사를 대하듯 태도가 돌변한다.
또 버스주차장이나 아파트 입구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뭔가를 찾으려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이같은 변화는 KBS `코미디 세상만사'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와 SBS의 `기분좋은 밤' 등에서 몰래카메라나 전화 감청을 통해 부부애를 공개하는 코너가 인기를 끌면서 `혹시나 나도…'하는 남편들이 늘어난데 따른 것.
아내의 의도대로 따라준다면 다행(?)이지만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아내에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마라"고 냉대하는 장면이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망신살이 뻗칠 것이 당연지사.
이때문에 요즘 남편들 사이에선 아내의 전화가 이유없이 반복된다든지 뜬금없이 "케이크가 먹고싶다"던가 "아이스크림을 사갖고 오라"는 등의 주문이 잇따르면 `혹시 이 전화가 그 전화?'하고 지레 넘겨짚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새해들어 아내와 금연 약속을 했다는 회사원 홍현택씨(32．서울 면목동)는 "책상앞에 `금연'이라고 써붙였는데도 동료들이 계속 담배를 권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집으로 전화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정도는 그래도 다행.
TV드라마 촬영 현장을 지나치거나 길거리에서 캠코더를 들고 있는 사람만 봐도 주위를 휘휘 돌아보는 의심많은 남편도 적지 않다.
`기분좋은 밤'에서 `악마의 유혹' 코너를 즐겨본다는 결혼 2년째의 이한석씨(32．서울 등촌동)는 "지난주 `순대가 먹고 싶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는 문득 내가 이 코너의 출연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종일 엉뚱한 짓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어딘가에 몰래카메라가 숨어있을 것 같아 아내의 주문대로 순대를 사갖고 퇴근했다는 이씨는 아내가 밥상을 차리는 동안 몰래카메라를 찾기 위해 식탁, 책상 밑을 샅샅히 뒤졌다고 한다.
SBS TV `기분좋은 밤'의 제작 책임자인 정환식PD는 "초기에는 낯선 여자로 하여금 남편을 유혹하도록 했지만 지금은 남편의 의지나 인정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면서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아내를 대하는 남편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