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세상] '사랑의 헌혈 가슴 뿌듯해요'
기사입력 1999년 01월 03일 14시 30분
권기하군(숭곡고 3년)은 지난달 24일 발표된 대학입시 특차 모집에서 떨어진뒤 적잖이 마음이 상했다.
대학에 합격한 친구들처럼 놀러갈 생각도 못한채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찌푸려 있던 권군의 얼굴은 28일에야 환히 펴졌다.
정시모집에 응시할 원서를 사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른 권군은 서점 맞은편 2층에 자리잡은 `광화문 헌혈의 집'을 발견했다.
권군은 전혀 망설임없이 같은 학교 박대천군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가 팔을 걷어 붙였다.
남을 돕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 질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작년 봄 학교에 찾아온 헌혈차를 보고 우연히 팔을 내밀었던 것이 이번으로 벌써 6번째.
`친구 따라 강남 온 격'인 박군도 함께 팔을 내밀었다.
딱히 헌혈할 마음은 없었지만 무언가 해낸듯한 친구의 뿌듯한 얼굴을 보자 `피를 뽑는다'는 두려움이 싹 가셨단다.
요즘 광화문 헌혈의 집은 이들 외에도 대입 원서를 사러 나왔다가 들른 학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매일 평균 60여명의 입시생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다는 담당 간호사의 말.
"아픈 사람 돕고 좋잖아요. 심장병 예방에도 좋대요."
응용동물학과에 진학해 동물 연구원이 되고 싶다는 장래 희망을 가진 권군.
권군이 누운 헌혈 침대 앞에는 원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함용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