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격정 눈물 19개월 웃음되찾은 '방원의처'
기사입력 1998년 05월 17일 15시 09분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KBS 1TV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이 오는 31일 159회를 끝으로 장장 19개월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14세기말 조선 건국의 격동기에 왕권을 확립한 태종의 일대기는 시청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계속되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강인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중전 민씨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다.
임산부의 몸으로 중전 민씨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최명길. 그녀를 스포츠조선 정규만 편집국장이 직접 만났다.
초여름의 햇살이 화사했던 13일 신라호텔에 나타난 최명길은 출산 부기가 거의 빠진 건강한 모습이었다.
－중전마마 아니 대비마마 아닌가요. 만나게 돼 기쁘군요.
▲（환하게 웃으며）저도 반갑습니다. 국장님께서 `용의 눈물'의 열렬한 팬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항상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장 갔을 때도 녹화를 해 나중에라도 꼭 보곤 했죠. 최명길씨의 열연도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 큰 이유입니다. 시청자들로부터 왕비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MBC TV `한중록'에서 혜경궁 홍씨 역을 한 지 꼭 10년만에 왕비역을 다시 맡게 됐죠. 이번 작품은 그때보다 훨씬 남성중심적이어서 과연 제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지 걱정했어요. 하지만 민씨가 워낙 강인한 캐릭터라 힘을 낼수 있었던 것 같아요.
－KBS 드라마에는 이번이 첫 출연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캐스팅단계에서 주저하지는 않았나요.
▲처녀 출연이라는 것보다는 아기를 갖는 것이 급해 망설였어요. 아기를 낳으려면 아무래도 작품에 차질이 생길것 같아서요. 이때 김재형PD께서 "원래 민씨는 8남매를 뒀으니 임신은 많이 할수록 리얼리티가 산다"고 하시더라구요.
－태종역의 유동근씨와는 처음 상대역이었다지요. 호흡은 잘 맞았나요.
▲유동근씨는 연기 욕심도 많고 열성적인 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긴장할 때가 많았어요. 흥분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이성을 잃어 주위의 물건을 내던지는 등 오버 액션을 할 때도 있거든요.
－지난 2월에는 만삭의 몸으로 30회분을 한꺼번에 촬영한 것이 화제였습니다. `벼락촬영' 끝내고 난 기분은 어땠는지요.
▲촬영이 끝나고 이젠 대본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저 좋았어요.（웃음） 촬영 당시에는 3주간 밤을 꼬박 새우면서 작업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스스로도 제가 해 냈다는게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극중 태종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등 당시 몸으로 연기하기 어려운 격한 신이 많았는데요.
▲임신 8개월째였던 때 대전의 문을 열고 달려들어가 소리치는 신이 있었어요. 몸이 무거워 부담은 됐지만 있는 힘을 다해 뛰어들며 소리를 질렀죠. 그런데 갑자기 허리에 심한 통증이 오더라구요. 그 길로 병원에 실려가 1주일간 병상신세를 져야 했죠.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아찔해요.
－방원을 향해 표독스런 표정을 짓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어떨땐 소름이 끼칠 정도였죠.（웃음） 실제로 사람을 그토록 미워해본 적이 있나요.
▲（정색하며）아뇨.（웃음） 그냥 드라마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표정이 나온 것 같아요.
－임신했을 때는 심리상태도 항상 편안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극중 노여워하는 연기가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요.
▲사실 아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항상 뱃속의 아기와 대화를 했죠. `아가야 미안하다. 아까 화 냈던 건 연기였어. 엄마는 절대 화 안났단다'라고 말이에요.
－태종은 외척인 민무구형제를 무참히 제거했는데 형제가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섭지는 않았나요.
▲전통적인 가부장제 문화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자는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죠. 초연해지려는 모습을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실제로 부군께서는 외척이 많나요?（웃음）
▲제가 1남5녀중 넷째니까 많은 편이죠.（웃음）
－외척에게 잘 해 줍니까.
▲그럼요.（한바탕 웃음）
－여자 입장에서 중전 민씨는 어떤 여자라고 생각하나요.
▲강인한 여장부면서 상당히 똑똑한 인물이죠. 하지만 뛰어난 재능과 의욕 때문에 태종에게 버림 받은 불쌍한 여자이기도 하죠. 저 같으면 그렇게 나서지 않고 제 뜻을 펼 것 같아요. 명분보다는 실리를 위주로 말이에요.
－실제 민씨는 최명길씨만큼 미인이 아니었다고 하던데.
▲남자 같이 우락부락하다는 기록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임신 후 살이 쪄 고민했는데 주위에서는 오히려 갈수록 실제 민씨와 닮아가는 것 같다고 격려하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민씨의 캐릭터는 꼭 과거의 인물만은 아닌 것 같군요. 요즘도 남편에게 권력을 쥐어줘 보려는 여장부가 있지 않겠어요. 부군 김한길의원을 부추겨 진짜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크게 웃음）글쎄요. 민씨 역할을 하며 주위로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듣긴 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연기자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상궁역을 맡았던 김을동 선배님이에요. 저 때문에 30회분 벼락촬영을 같이 하셔야 했거든요. 임신 후 부은 제 모습을 조금이라도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 뚱뚱한 김선배님을 늘 제 곁에 두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어요.
－`용의 눈물'은 시청률 면에서도 정상을 지켜왔습니다. 시청자의 반응을 직접 느껴본 적이 있나요.
▲촬영장과 집만을 오가다 보니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민관식 전장관과 강원룡 목사께서 드라마를 보시다 직접 전화를 걸어와 놀랐어요. 민속촌에 촬영을 갔을 때는 어린이들까지 저를 보고는 `방원의 처가 간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구요.
－극중에서는 양녕, 효령, 충녕 등 개성이 강한 아들들을 뒀죠? 이중 새로 태어난 아들 어진이가 닮았으면 하는 모델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웃으면서） 물론 착하고 똑똑한 충녕이죠.
－아기를 더 낳을 생각은 없나요.
▲국장님,（약간 큰 소리） 저 출산한지 아직 두 달 밖에 안됐어요.（크게 웃음） 남편과 상의도 해야 하고 또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드라마에 출연하는 동안 부군의 내조는 있었나요.
▲남편은 적극적인 후원자예요. `용의 눈물'에 캐스팅됐을 때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란 책을 사다주며 읽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그 이후로도 제 연기를 항상 모니터해 준 것은 물론 제가 늦게 귀가해도 싫은 소리 한번 한 적이 없어요.
－81년 데뷔 이후 벌써 연기생활 18년째에 접어들고 있군요. 결코 짧지 않은 연륜인데 본인이 생각하는 연기의 실체는 어떤 건가요.
▲늘 가슴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해요. 극중 배역에 동화되는 거죠. 단 한번도 대충한 적은 없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그리고 꼭 해 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어요. 우선 건강을 회복해야 하구요. 배역에 대한 특별한 욕심은 없지만 서른여섯의 나이를 먹은 만큼 인생의 연륜이 배어나는 역할이었으면 해요. 영화 `데드 맨 워킹'에서의 수잔 서랜든 같은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시청자에게 한마디 한다면.
▲`용의 눈물'을 사랑해주신 시청자분들께 감사해요. 기록에 따르면 드라마에 출연한 연인원이 8천명에 달한다고 하던데 그 모든 분들의 노고도 고맙구요. 이번 작품을 통해 드라마의 영향력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됐어요. 책임감을 갖고 연기하겠습니다. 그리고 출산 후 첫 인터뷰를 스포츠조선 국장님과 하게 돼 자랑스러워요.
[정리＝서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