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이트] 딸 결혼식을 비디오로 본 이유
기사입력 1998년 05월 15일 16시 12분
또 또 건망증 야그.
인간에게 `기억력'이라는 비상한 재주가 있기에 사회가 질서를 유지한다고 그런다.
그러나 또 인간에게는 기억력과는 전혀 반대 능력(?)인 `건망증'이 있어서 행복하단다.
아픈 기억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가 없다지 아마.
우산장수가 망했다는 얘길 들어 보신 적이 있는지…?
인간에게 건망증이 있는한 우산제조업체는 부도가 날 염려는 없다.
건망증＝치매? 아니다. 노인 중에 건망증이 많은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건망증이라는 것은 연령과 상관없이 찾아 온단다.
7. 나, 큰 아들.
퇴근 길에 주차장으로 내려 간다. 자동차를 어디다 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건 건망증이 아니다. 그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그날은 자동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8. 나, 어머니.
오랫만에 잘한다는 미장원엘 갔다. 주인이 반겨 준다.
미장이 아니 미용사 "오마나! 그동안 우리집 잊으시고 어떤 후진 곳으로만 다니셨어?!"
나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요. 30분 안으로 끝내 줘야 해요. 시간 없어!"
자기는 시간이 많다는 걸까, 미용사는 시시콜콜한 얘기 다 해가며 머리를 매만지더니 "모처럼 오셨는데 이왕 오신거 머리를 마는게 어때요? 10년은 젊어 뵈실텐데…."
나 솔깃 해서 "그럼 간만에 파마를 해?!"
3시간만에 파마를 끝내고 집으로 왔는데 집안 공기가 썰렁.
나는 딸 아이 결혼식을 비디오로 봐야 했다.
9. 나, 할머니.
할망구들이 동창회를 한단다. 하긴 죽기 전에 한번씩이라도 더 봐둬야만 저승에서 만나도 얼굴을 기억하겠지. 나는 다른 아이(노인)들에게 기죽기 싫어 화려하게 치장을 하느라 반지 하나 고르는데도 무려 2시간이 걸렸다.
(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반지가 2개 밖에 없음)
동창들을 만나서 우아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얘드아, 오데가마니다!(얘들아 오래간만이다)
_아, 망할놈의 건망증. 틀니를 안 끼우고 나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