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주니치메일] 전라도식 일본말 어딜가나 웃음
기사입력 1998년 05월 11일 15시 01분
"허∼벌나게 아리가도네∼잉."
"아, 글씨! 소당께."
무슨 말인고 하면 바로 내가 개발한 `전라도식 니혼고（일본어）라는 말씀.
`허벌나게'는 많이, 굉장히 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이고, `소당께'는 역시 나고야 벤（사투리）라는 `소다네'의 끝을 전라도식 어미로 바꾼 것이다.
나는 어딜가나 사근사근 붙임성이 좋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잘 걸고, 모르는 것은 얼굴 두껍게 창피를 무릅쓰고라도 물어봐 궁금증을 풀고 나야 개운해 진다.
일본이라고 대수냐.
짧은 일본어지만 온갖 몸짓을 섞고, 그래도 안되면 서툰 영어를 보태서 말을 한다.
그것도 안되면 표정연기를 동원하고, 맨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내 속이나 후련하게 풀어보자'며 한국말로 큰 소리로 떠들어 댄다.
뜻을 몰라 멀뚱멀뚱 내 얼굴만 보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주위 사람이나 코칭스태프, 동료선수들이 나보고 옛날 （선）동열이 형이 처음 왔을 때와 다르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내 행동 때문일 것이다.
전라도식 일본어도 그래서 탄생했다.
광주 토박이인 내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은 당연한데 나는 내 고향이 자랑스러워 일부러 서울 말씨를 흉내내지 않는다.
아무래도 처음 일본에 와서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한국말을 조금씩 아는 교포들이 많았다.
동열이 형이랑 가장 친한 재일교포 사업가 야마모토 준씨（한국명 최 윤） 등이 대표적인 분들인데 나는 `준상 형'이라 부른다.
성이 아닌 이름 뒤에 씨를 뜻하는 `상'을 붙이고 다시 형이라고 부르니 우습기 짝이없는 일본어이지만 그래도 이 `이종범식' 일본어는 얼마나 정감이 있는가.
일본어도 한마디해야 친해지고, 그것도 유머스럽게 하면 좌중의 분위기도 좋아진다.
`허벌나게, 아! 글씨, ∼잉'같은 사투리의 뜻을 알게 된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고, 이제는 내 억양과 표정을 따라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작전과 포메이션이 복잡한 야구를 하다보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라는 게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남들이 내게 말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같은 외국인 선수인 푸에르토리코 출신 3루수 고메스와는 얘기를 많이 나눈다.
그렇다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슨 심각한 얘기를 하는게 아니고, 내가 "이이요, 이이요（좋아요, 좋아）"라고 하면 "OK, 도데모 이요（굉장히 좋아）"라고 맞장구치는 정도다.
그래도 쾌활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치면 동료 선수로서 호흡이 일치된다.
지금 틈틈이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1∼2년쯤 지나면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해질 것이다.
그때는 동료들이 마운드에 모였을 때 작전도 주고 받고, 투수도 격려해 줘야지.
[11일 오전 도쿄의 원정숙소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