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 IMF거리엔 '실용성' 물결
기사입력 1998년 04월 01일 15시 16분
스칼렛 오하라가 그랬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전쟁의 와중에서, 커튼을 찢어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무도회에 갔다. 여성의 패션본능, 패션과 불황과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일화다.
패션은 사회, 경제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요즘 실용패션이 강세를 보이는 것도 사상 최악의 불황 탓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불황기 패션은 어땠을까.
공통점이 있다. 기본형, 캐주얼룩 등 실용적인 옷들이 강세를 보인다. 색상도 검정, 회색 계열의 단조로운 컬러가 주류를 이루고 소재도 투박해진다.
전통적으로 불황기에는 치마길이가 짧아졌다. 30년대 미국공황기에는 무릎길이, 오일쇼크로 휘청거렸던 70년대에는 미니스커트가 물결을 이뤘다. 40년 차이를 두고, 같은 현상이 반복된 것. 활동성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옷감이 적게 든다는 것도 한 이유.
1차대전 후에는 군복에서 유래된 밀리터리룩이 새로 등장했다. 견장, 겉으로 박음질한 커다란 주머니, 베레모 등의 아이템은 이제 여성복에도 애용된다.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2차대전 후 영국.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허리를 강조한, 단이 넓고 긴 스타일의 `뉴룩'을 선보이자 정부는 이를 저지하려고 했다. 옷감이 많이 들어간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누군가. 파리 여성들은 전쟁으로 스타킹을 구하기가 어렵자 종아리 뒤쪽에 검은 잉크로 세로줄을 긋고 다녔다. 스타킹을 신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그만큼 멋내기에 필사적이다. 영국정부의 시도는 당연히 실패.
그러나 이제 치마길이와 불황과의 관련성은 줄어들었다. 첨단소재들이 속속 개발돼 양의 개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신 소재의 종류가 중시된다.
불황과 세기말의 불안함이 겹쳐 서정적이고 따뜻한 이미지를 주는, 니트같은 소재가 인기를 끈다. 정장보다 한 벌로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단품이 각광받는다. 후드티셔츠가 한창 뜨고 있는 배경이다.
LG패션 패션정보실 전영미실장은 "IMF한파로 인한 불황이 심각한 이번 시즌 실용성과 활동성을 강조한 아이템인 스포츠룩과 겹쳐입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서 "미니스커트와 트임과 주름을 사용한 무릎길이 스커트가 공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