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23)
기사입력 1998년 03월 27일 16시 00분
시계가게 문을 닫아버린 핫산과 함께 이준석이 고기가게로 다가오자 요시에가 처마 밑에서 나왔다.
핫산이 주춤거리며 이준석을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누구요?"
"내 약혼자의 친구야."
그 소리를 요시에도 들었지만 잠자코 핫산에게 눈인사를 했다. 거리에는 행인들이 가득차 있었다.
관광객들도 많았는데 이쪽이 이슬람 문화의 색채가 가장 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핫산은 거침없이 행인들을 헤치며 앞장서 갔고 그들은 뒤를 따랐다.
"하무드는 집에 은신하고 있다는 거요."
이준석이 옆에 따라붙은 요시에에게 말했다.
"자기 몫이 얼마냐고 묻길래 천불 주겠다고 했소."
"돈 아직 주지 않았지요?"
"거래의 기본은 압니다. 하무드를 만나면 주기로 했소."
골목으로 들어선 핫산은 미로같은 갈림길들을 잘도 빠져 나갔다.
퀴퀴한 냄새에다 향 냄새도 났고 돌담 안쪽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좁은 골목을 비켜 지나는 여인들은 모두 베일로 얼굴을 가렸다. 20분쯤이 지났을때 핫산은 낡은 단층 돌집 앞에 멈춰섰다.
"여기요."
그가 열려진 판자문을 밀고 들어섰으므로 그들은 뒤를 따랐다.
세평쯤 되는 좁은 마당 건너편에 판자문이 있었고 그들은 곧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은 의외로 넓었다. 바닥에는 낡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은근한 향냄새가 났다.
천장에 달린 전등이 집안을 밝히고 있었는데 앞쪽의 열려진 문으로 들어서던 여자가 놀라 도망쳤다.
"하무드！"
핫산이 소리치자 곧 옆쪽 문으로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 이준석은 숨을 들이 마셨다.
사진과 같은 용모의 사내였다. 하무드인 것이다.
들어선 그가 놀란듯 두 눈을 치켜 떴다가 핫산에게 시선을 주었다.
핫산이 빠른 아랍어로 설명을 했지만 그의 화난 표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요시에가 한걸음 그에게로 다가가 섰다.
"하무드씨, 우리는 민간인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만 말해주면 돌아갑니다. 물론 사례를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누가 날 노리는줄 압니까?"
하무드의 영어는 유창했다. 그가 이준석과 요시에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CIA는 말할것도 없고 이집트 정보국, 이스라엘의 모사드에다 회교원리주의의 특수부대가 모두 날 노리고 있단 말이오."
"혼자만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
자르듯 말한 이준석이 그의 시선을 받았다.
"알고있는 사실을 말해요. 그러면 놈들이 우리를 쫓을 테니까."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낸 그가 하무드에게 내밀었다.
"5천불이오. 도피자금으로 쓰시오."
하무드가 돈뭉치를 받았다. 두 눈이 열에 뜬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버스가 폭발 직전에 세 사람이 내렸습니다. 서양인 하나에 아랍인 둘이오."
그러자 핫산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난 잠깐 밖에 나가 있겠소."
핫산이 나가자 하무드는 양탄자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이준석과 요시에는 앞에 앉았다.
"나는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미나 펠리스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요."
이것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다. 이준석과 요시에는 긴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