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복고풍 장수들 도심 등장
기사입력 1998년 03월 23일 14시 49분
딸부잣집 막내딸을 `말순'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시절.
쌀포대로 속옷을 만들어 입어도 흉이 되지 않았던 그 시절.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60년대를 그린 드라마 `육남매'가 장안의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대도시 거리에 때아닌 복고풍이 넘실거리고 있다.
`육남매'에서 어머니로 출연하는 장미희의 호구지책인 병아리 장수가 초등학교 주변에 등장했고, 대학가에선 뻥튀기나 튀밥 장수들이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를 외치는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학교 주변을 맴돌던 복고풍이 최근에는 `그때 그 시절'의 코흘리개들이 어른으로 자라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오피스 타운에 상륙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30년전 코흘리개들이 양지 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모형 만들기를 했던 일명 `뽑기'가 직장인들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고 있는 것이다.
뽑기는 설탕과 소다를 섞어 녹여 납작하게 누른 뒤 별이나 하트, 사람 무늬를 새긴 과자.
무늬의 가장자리를 떼어내고 매끈하게 모형을 만들어 내면 보너스로 한개를 더 줘 당시 어린 아이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그러나 요즘 뽑기 장수들은 궁핍했지만 정감이 넘쳤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30∼40대 직장인들의 추억을 자극해 짭짤한 매상을 올리고 있다.
S사에 근무하는 이영진씨（39）는 "최근 길을 걷다가 뽑기 장수를 보고 고향 친구들과 사먹은 적이 있다"면서 "그 시절의 맛은 아니었지만 잠시 회상에 젖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시청앞 북창동의 뽑기 장수는 좌판 한쪽에 세워둔 깃발에 아예 `그때를 아십니까'라고 적어 놓고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만큼 가격이나 제조법도 변화의 물결에 신식으로 바뀌었다.
가격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개에 10원짜리 동전 한닢을 받았던 `그때 그 시절'보다 50∼100배가 뛴 500∼1천원이고 연탄불 대신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뽑기를 찍어내고 있다.
퇴근 시간인 오후 6시쯤에 좌판을 차려 술손님이 잠잠해지는 11시까지 영업하는 이모씨는 "취기가 오른 직장인들이 주요 고객"이라면서 "친구끼리 찾아오면 내기를 벌여 지는 사람이 돈을 내곤 한다"고 말했다.
[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