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세계의여성들'] 문학의 금남구역
기사입력 1998년 03월 16일 15시 00분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출판사.
도서출판 `세계의 여성들'은 국내 유일의 `여성 전용 출판사'다. 여성 작가의 책만 낸다. 제아무리 유명한 작가나 필자라도 남자이면 거절이다.
사장과 편집장, 직원도 모두 여자들이다. 지난 95년 출판사가 문을 연 뒤 남자 직원이 발을 들여놓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이 출판사는 왜 `남녀 차별'을 하는 것일까. 혹시 `드센 페미니스트'의 집합소가 아닐까.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출판사에서 펴낸 책들을 보면 `이념'의 색깔은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채시라 추미애 임경숙씨 등이 쓴 출판사의 첫 작품 `프로는 말이 없다. 다만 일로써 승부할 뿐이다'를 비롯, `단자간에는 창(窓)이 없다'(소설) `아름답고 평등한 퀴리부부'(전기소설) `발을 만지는 여자'(발건강 에세이) `꽃을 자주 받는 여자'(수필) `지제의 연인'(소설)에 이르기까지 무슨 공통 분모가 있는 것같지는 않다. 필자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을 빼놓고는.
"이미 많은 여성 작가들이 차별을 받고 있잖습니까. 우리가 여성 작가의 원고만 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차별을 조금이나마 없애고 싶어서지요. 재능은 있지만 무명인 여성 필자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 저희들의 임무죠."
대표 김현리씨(32)의 설명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명이라는 이유로 다른 출판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다.
김남심 편집장(34)은 "요즘같은 출판 불황에 꼭 그렇게 `엉뚱한 고집'을 부려야 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이따금 있지만 초지일관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여자들끼리만 근무하다보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단다.
직원 김옥란씨(36)는 "책을 잔뜩 들고 옮길 때, 사무실 전등이 나갔을 때, 벽에 못을 박을 때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점은 더 많다.
조영옥씨(35)는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고,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도시락을 싸와 나누어 먹는 것도 우리들만의 재미"라고 귀띔한다.
`세계의 여성들'은 요즘 공공도서관 군부대 복지원 등에 구간을 무료로 배포해 주는 `선행'도 하고 있다.
[이승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