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5)

기사입력 1998년 03월 06일 15시 18분


나일 힐튼호텔의 로비로 들어선 조남훈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로비안은 시원했지만 독한 향수냄새가 맡아졌다. 수백가지 향수를 혼합시킨것 같은 냄새였다.

이준석과는 미리 연락을 했으므로 곧장 엘리베이터로 다가간 그는 8층에서 내렸다.

824호실 앞으로 다가간 그가 노크를 하자 곧 문이 열렸다. 눈인사를 한 이준석이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 오시지요."

조그만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자 조남훈이 가방에서 노란색 파일을 꺼내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자료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카피한 것이니까 밖으로 유출 시키지만 말아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아침에 파리의 정필수한테서 연락을 받은터라 조남훈이 서류를 갖고 올지는 알고 있었다.

조남훈이 눈을 껌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 오래 계실겁니까?"

"아직 모릅니다."

"해병대에서 휴가 맡으셨습니까?"

"그런 셈이죠."

서먹한 분위기가 가셨는지 조남훈이 편하게 앉았다.

"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집트 정보국에서 사건을 철저히 통제 했습니다. 현장에는 일본이나 미국 대사관 직원들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독일과 영국, 이스라엘 관광객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쪽과는 연락해 보지 못했습니다."

물잔을 쥔 조남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겪어 보시면 알게 될겁니다. 이건 국내 사건처럼 풀어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서류를 넘기던 이준석이 문득 머리를 들었다.

"여기, 하무드라는 목격자는 만나 보셨습니까?"

그러자 조남훈이 머리를 저었다.

"관광 안내원인데 사건 며칠 후에 실종이 되었어요. 회사에 여러번 전화를 했지만 나오지 않습니다."

조남훈은 깐깐한 성격인것 같았다. 사건기사가 난 이집트 신문은 물론이고 해외 특파원의 기사도 스크랩해 놓았는데 하무드는 UPI 통신의 기자가 만난 목격자였다.

조남훈은 하무드의 이름에 붉은선까지 그어 놓았던 것이다. 머리를 든 이준석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례했던 점을 사과 드립니다. 자료를 보니 영사님은 최선을 다하신것 같은데요."

"최선을 다한것은 아니죠."

자리에서 일어선 조남훈이 쑥쓰러운듯 웃었다.

"어려운 일 있으시면 연락 하십시오. 파리의 정무관께서도 저한테 당부를 하셨습니다."

이준석의 방을 나온 조남훈이 다시 호텔의 로비에 내려 왔을때는 오후 4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빌어먹을. 우라지게 덥군."

로비에 멈춰선 그가 호텔 밖을 보면서 투덜 거렸다.

검정색 택시 서너대가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차 안에 들어가면 찜통일 것이었다.

그리고 타기 전에 운전사와 요금 흥정 할 일을 생각하자 짜증이 났다.

그런 조남훈의 뒷모습을 로비 안쪽의 벽에 붙어선 한 사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말쑥한 신사복 차림의 아랍인이다. 그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824호실에서 20분쯤 있었습니다."

낮게 말한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 현관을 나갔습니다. 택시를 잡는데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