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이의정(2)
기사입력 1998년 03월 04일 14시 14분
아톰머리는 내 이미지를 일순간에 바꿔버린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아톰머리에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가발이다. 처음엔 녹화때마다 미용실을 찾아가 헤어스타일을 바꾸느라 고생도 했다. 그래서 아예 가발로 만들어 쓰기로 했다. 지금은 내가 보물단지 처럼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다.
`남자셋 여자셋'이 화제를 모으면서 나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계속되는 CF의 쇄도. 화장품을 비롯한 농심라면, LG카세트, 애경 미백치약과 011 휴대폰전화 등 5∼6편을 잇달아 계약했다.
어리둥절한 나날이 계속됐다. 그러나 난 스타가 됐다는 사실 보다 일거리가 많아진 것에 오히려 희열을 느꼈다.
무엇보다 화장품 모델이 된 것은 나를 기쁘게 했다. `늘씬한 미녀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화장품 모델을 내가 하게 되다니, 으흐흐흐 좋아라'. 정말 신이 났다. 나를 돌봐주시는 김광수 매니지먼트 사장님이 광고계약을 했다고 통보해주는 날 난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샀다. 그리고 못먹는 술도 한잔 마셨다.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 더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번 밀려들기 시작한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 외모로 화장품 모델이 된 것만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라디오 DJ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천방지축 왈가닥 이미지 때문에 평생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화장품 모델이 성사됐듯이 라디오에서도 이미지 파괴가 또 다른 나의 매력이었던가 보다.
MBC FM `정오의 희망곡'. 4년 넘게 진행하던 허수경씨가 미국유학길에 오르자마자 그 자리를 곧바로 내가 꿰찼다. `허수경의 정오의 희망곡'이란 타이틀이 `이의정의 정오의 희망곡'으로 바뀌었다. 가슴이 벅찼다. 이의정이 라디오 DJ가 되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처음 마이크 앞에 서던 날 난 김혜리, 엄정화씨 등 물망에 올랐던 내로라하는 스타급 경쟁자들중에서 당당히 발탁됐다는 사실에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했다.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연기자로서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연예계 전체 흐름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말주변도 부쩍 늘었다. 상대방에게 내 의사표현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 한 드라마속의 주어진 배역만을 소화하기 위해 다람쥐 쳇바퀴 돌던 내 모습이 저절로 보이는 것 같았다.
DJ를 맡고서부터 조금은 더 바빠졌지만 덕분에 `남자셋 여자셋'의 분위기도 저절로 살아나는듯 했다. 줄거리도 내 중심으로 많이 몰아준다는 느낌이어서 늘 기분이 좋았다. 우희진 이제니 등은 물론이고 송승헌 홍경인 등 남자연기자들까지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정오의 희망곡'은 사실 본격적인 DJ가 되는 서막일 뿐이었다. 진짜 출발은 탤런트 박소현씨 대신 맡은 `FM 데이트'. `정오의 희망곡'을 6개월만에 그만두고 `이의정의 FM 데이트'로 옮겼으니 한단계 상승발전한 것인데 막상 새 프로그램을 맡고보니 매일 생방송 진행이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