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식권주' 유행
기사입력 1998년 02월 19일 15시 31분
요즘 사무실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충무로나 여의도, 잠실 등지의 식당에는 돈없이 술마시는 애주가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점잖은 체면에 `먹고 뛰기'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외상술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이 술값으로 지불하는 것은 다름아닌 식권이다.
충무로의 경우 쌍용증권이나 상암기획, 동부화재 등 여러 업체에서 주변의 식당들과 계약을 하고 사원들에게 식권을 나눠줘 점심식사를 해결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IMF시대 개막 이후 이 식권의 용도가 차츰 바뀌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들 못해 `퇴근 후 한잔'의 기회가 줄어들자 식권으로 밥 대신 술을 해결하는 회사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충무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과거에는 회식들이 잦은 탓에 식권이 남아돌아 식권 처분을 위한 술파티를 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면서 "식권을 여러 용도로 알뜰히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송파구 방이동의 고깃집 `한우 3년생' 지배인 임순조씨도 "요즘 식권손님 중에는 밥손님 보다 술손님이 더 많다"며 놀라워했다.
식권은 업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3천원 짜리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대여섯명이 사나흘만 모으면 삼겹살 등 푸짐한 안주에 소주잔을 제법 낙낙하게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이름하여 `식권주'.
그렇다고 해서 굶을 수야 없는 법.
이들은 식권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햄버거 또는 빵과 우유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한다.
술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인 셈이다.
여의도의 한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최준구씨（33）는 "요즘같은 세상에 소주 한잔하는 재미라도 없으면 어떻게 살겠냐"면서 "천원짜리 한 장에 부들부들 떨어야하는 요즘, 식권은 우리의 희망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물론 식당측은 손님이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상관없다.
`식권'이든 `주권'이든 거래 업체에 넘겨주고 대금청구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회사측에서도 사원들의 식권유용을 제재할 근거도 필요도 없다.
구내식당이 없거나, 있어도 직원들의 까다로운 식성을 맞추기 위해 회사측이 식권으로 외부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회사 밀집지역의 식당가에서는 `식권주'가 일반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