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박] 해고 고통 딛고선 '명 디자이너'
기사입력 1998년 02월 15일 15시 16분
디자이너 찰스 박(53). 국내 신부 10명 중 2명이 그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중견 웨딩드레스 제조업체 (주)혜원웨딩의 사장이기도 하다.
그의 차림새는 일년 내내 똑같다. 좀 튄다. 남대문시장에서 산 군용 모자, 군화, 견장이 달린 니트 티셔츠에 귀를 덮는 긴 파마머리, 콧수염과 턱수염. 영락없는 문학청년이다. 하지만 그는 91년 11월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잘 나가던' 전무이사였다.
인생의 전환점은 마흔 여섯살에, 어느 날 갑자기, 타의에 의해 찾아왔다. 해고. 그가 최근 `대기업 박전무에서 디자이너 찰스 박으로'(명경)를 펴냈다. 서울대 상대, 한국은행원 출신의 엘리트가 실직의 어려움을 딛고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박종민이라는 본명으로 20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강요' 당하던 날. 그는 지체없이 가족회의를 소집, 해고당한 사실을 통보했다. 숨길 이유가 없었다.
"체면이나 자존심은 즉시 버렸습니다. 김밥 싸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어요. 캄캄했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뭘 하면 못하겠느냐, 맨발로 뛰자, 이를 악물었죠."
그렇게 사방팔방 돌아다니다가 하청업체의 하나였던 혜원웨딩과 손을 잡았다. 처음엔 사장이었다. 원단 구매부터 제작, 영업까지 직접 챙겼다. 독학으로 국내외 모든 웨딩드레스 책을 독파했다. 공장직원들의 눈칫밥을 먹으며 `시다'로 일했다. 이젠 디자이너로 더 바쁘다.
예전처럼 기사가 딸린 승용차는 없지만, 그 때보다 더 행복하다. 내면에 감춰졌던 `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IMF한파의 한복판에서 책을 내면서, 그는 한 가지만 바란다. `디자이너 찰스 박'의 삶이 시련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기를.
"고난도 인생의 한 과정입니다. 누구에게나 그걸 극복할 잠재력이 있어요. 다만 언제, 어떻게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주)혜원웨딩은 현재 직원 50여명에 연매출액이 30억원을 웃돈다. 올 수출목표액만도 250만달러. 그래도 그는 실직자 시절부터 몸에 밴 지하철 이용을 고수하고 있다.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