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10)

기사입력 1998년 01월 13일 13시 56분

병부상서 체르비가 개원성에 도착한것은 6월 초순이었다. 체르비는 쿠빌라이의 신임을 받는 인물로 몽골제국의 병권을 쥔 대신이다.

기마군 3천의 호위를 받으며 연경에서 곧장 달려왔는데 요양행성의 주성(主城)인 요양성도 들르지 않았다.

병마절도사 윤의충이 웅거한 개원성이 이제 주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청에 들어선 그는 윤의충의 인사를 받았다.

병부상서는 병마절도사의 직속상관이며 또한 황제의 특사로 온 것이다.

"절도사 대감을 처음 뵙소."

상석에 자리잡은 그가 은근한 시선을 보내며 웃었다.

40대 후반쯤의 나이에 짙은 수염을 기른 몽골인으로 역시 역전의 무장이다. 청안에 운집한 관리들은 숨을 죽였다.

"대감께서 먼길을 오셨습니다."

윤의충의 인사에 그가 다시 소리없이 웃었다. 호의(好意)가 띠어 있다.

"황제폐하의 명을 받고 왔소."

황제의 명을 전할때에는 격식을 차려야 하는데도 그는 앉은채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대감, 익숙지 않으실테니 내, 조서를 읽지 않고 말씀으로 전하겠소."

"고마우신 배려 올시다."

"폐하께선 대감이 남송정벌에 참여하기를 바라시오. 휘하의 여진군과 말갈, 고려인을 지휘하는 정남대도독으로 명하셨소."

"…."

"정남대도독은 별동군의 수장으로 정벌군 총사령인 바얀의 지휘만 받소."

머리를 든 윤의충이 주위의 무장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여진족이며 말갈인 고려인이 섞여 있었고 이미 남송 출신의 무장들은 곁을 떠났다.

청안의 수백개 시선이 그를 바라보는 중이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윤의충이 입을 열었다.

"삼가 폐하의 영을 받겠소이다."

"대감의 용명을 크게 떨칠수가 있을 것이오."

만족한듯 체르비가 붉은 입안을 보이며 웃었다.

"한달안에 황하 상류의 도천성에 주둔한 바얀 총사령께 도달 해야 될것이오. 황제께선 기병 이만에 보군 사만으로 육만의 군세를 만들라 하셨소."

"말이 부족합니다. 인근 마장에서 말을 구입해야만 하나 군자금이 말랐소이다."

그러자 체르비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금자로 백만냥을 가져왔소. 그것이면 말과 군량이 준비될수 있을 것이오."

이미 체르비는 윤의충의 출전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안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조금 들뜨고 긴장이 풀린 것이다.

무장들은 대부분 단순하다. 싸움이 있어야 실력발휘의 기회가 생기는 것인데다 여진이나 거란족은 한인의 남송정벌에 거의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윤의충이 체르비를 바라보았다.

"대감, 고려군도 남송정벌에 참여 한다고 들었소이다. 고려군은 누구 휘하에 듭니까?"

"고려국 상장군 이도명이 삼만을 이끌고 올것이나 전력이 보잘것 없소. 아마 총사령 휘하의 치중대나 맡게될 것이오."

힐끗 윤의충에게 시선을 준 그가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도명은 몽골제국의 부도독으로 참전하게 되었으니 대감의 하수(下手)요, 그자를 부릴 기회가 올수도 있을 것이오."

윤의충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도명은 약소국의 무장인 것이다.

고려땅 안에서는 세도가 높았겠지만 여진군 육만을 이끄는 자신보다 하급 무장이 되는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