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박성수 초단●이계훈 3단
기사입력 1998년 01월 05일 14시 20분
제6보(89∼100)＝프로 초년생들과 대국하는 중견 기사들의 심적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다. 대선배로서의 진면목, 즉 프로세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쌓아온 `노하우'를 보란듯 구사, 새까만 후배에게 실력적 우위를 따끔하게 각인시켜줘야 한다는 의무 내지 사명감이 그들의 공통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담감은 `지면 망신, 이겨도 본전'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며 급기야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심안이 흐려져 간혹 판을 그르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프로는 어떤 상대를 막론하고 항시 마음을 비워야 자신의 바둑을 소신껏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도 사람인 이상 항상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싶지 않은 것. 이 판의 이 3단도 예외는 아닌 듯. 앞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 흑 ▲로 큰 손해를 자초했고, 본보의 흑 89 또한 그런 부류의 방향착오였다. 흑 89는 큰 곳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대세점은 아니었다.
X참고도〉 흑 1(또는 A)이 놓칠 수 없는 이 판의 대세점이었다. 이 한수로 좌변은 거의 흑집으로 굳어지는 상황. 다음 백은 2로 우상귀에 뛰어드는 정도인데 흑은 7까지 알기 쉽게 처리하고 9로 뻗어 승세에는 `이상무'였다.
백 92가 통렬한 기대기 전법. 귀 흑 한점의 수습을 기다려 98까지 자연스럽게 좌변을 유린하고 있다. 흑으로선 귀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울며 겨자먹기식'수습이나 이제 와서 후회해도 이미 때가 늦다.
좌변이 본보처럼 초토화되면 그 자체도 물론 크지만 더욱 문제는 좌하 일대 흑 대마 전체가 은근히 근거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흑으로선 혹을 하나더 붙인 셈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