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비화X파일] 24세 K씨의 에이즈 복수극 - 중
기사입력 1997년 06월 14일 14시 43분
K씨의 진술은 사흘 낮밤으로 계속됐다.
회한의 눈물을 훔쳐가며 본의아니게 저질러진 에이즈 보복극의 전모를 차근차근 풀어냈다.
중학교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가 새 엄마와 결혼했다.
첫 성관계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시작됐다. 우연한 기회에 연상의 여인과 사귀게 됐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하다 손 잡고 포옹도 하게 됐고 어느새 잠자리까지 하게 됐다. 꿈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성간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랑하던 여인이 연탄가스 사고로 숨진 것이다.
여인의 향기를 지우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해 전전하다 낙원동의 술집 종업원으로 취직하게 됐다.
처음에는 단란주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게이바'라는 거였다.
`삐끼'로 시작했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동성연애자나 양성연애자처럼 보이는 인상착의의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다 내근을 하게 됐다. 속칭 `남창' 일을 하게 된 거다. 손님들에게 술도 따라주고 안주도 먹여주고 입술을 대주기도 하고…. 일반 룸살롱의 손님과 호스티스가 하는 일이 게이바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손님 가운데는 독신자도 있고, 유부남도 있고, 이혼남도 있다. 놀라운 것은 변호사, 공인회계사, 기업체 사장 등 엘리트나 부유층도 꽤 많다는 것이다.
흔히 호모는 타고 난다고들 한다. 그런 점에서는 나도 어느 정도 호모 성향을 타고 난 것 같다.
어느 날이었다. 손님도 취하고, 나도 취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취한 손님을 여관까지 바래다 드렸다.
일단 여관까지 간 것 같기는 한데 그 다음에는 기억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옷이 벗겨져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안경을 끼고 있던 어젯밤 그 손님이 벌거벗은 채 누워있었다.
그게 나의 첫 호모섹슈얼의 경험이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나에게 숨어 있던 호모 기질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심심찮게 손님들과 잠자리를 함께 했다. 10만원, 20만원씩 팁도 받아가며.
낙원동 `게이바'가 `게이들의 천국'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국이나 일본에서 찾아오는 호모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40대의 재미교포 아저씨도 그렇게 만났다. 아저씨가 밖으로 나가자고 해 카섹스의 명소인 북악스카이웨이 부근으로 가 질펀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6개월 동안은 누구와도 관계를 한 적이 없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것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국립보건원에서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중간에 우연찮게 헌혈을 한 적이 있는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설마했는데 예상대로 였다. 92년 5월 16일 재검사 결과 에이즈 양성 반응이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