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야구세상] '수입문화'야구의 토착화
기사입력 1997년 06월 11일 14시 40분
잠시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은 역시 야구 열기가 대단했다.
거의 모든 택시운전수는 야구경기 중계를 틀어 놓고 있었고, 공항에서는 사람들이 스포츠신문에 코를 박고 어제 자신이 본 경기에 동감을 얻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본의 프로야구는 가장 확실한 서구화, 미국화, 너그럽게 말하면 국제화되어 있다.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미국을 반대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시대에는 일본에서 야구경기 자체가 금지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미국제'이기 때문이었다.
그 야구가 지금은 일본이 가장 즐기는 `미국제'가 되어있다.
약간 일본식으로 변화하긴 했어도….
그런데 내가 일본에 있는 동안 프로야구계에서 아주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올해부터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는 `국제친선'이라는 이름아래 심판 교류를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 두나라의 심판이 교환되는 제도이다.
제1호로서 미국 센트럴리그에 소속 되어 있었던 마이클 디뮤로 심판이 일본 프로야구 심판으로 왔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사건의 발단은 주니치와 요코하마 경기였다.
디뮤로 심판은 주심을 맡고 있었는데 6회 주니치 공격에서 타자가 스트라이크판정에 따를 수 없다며 항의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디뮤로는 심판의 판정에 불복을 금지하는 규정을 들어 선수에게 퇴장을 선고했다.
그러자 그 타자는 열을 받아 디뮤로 심판의 멱살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그 다음날 디뮤로는 일본리그협의회장을 찾아가 `심경을 정리하고 싶다'며 휴양신청을 냈다.
그는 "맞아보기도 처음이고 코치에 둘러싸인 것도 처음이다.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고 정신적인 쇼크를 호소했다.
그러자 일본리그협회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월드컵 문제도 있고 또 세계적 기준인 심판에 대해 불복한 점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면서 "타자에게 엄중주의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 기자회견에 참가한 50여명의 기자중 20여명이나 되는 미국 특파원들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다. 앞으로 미_일야구가 원만히 가겠는가" 등 풍토 문제까지 들추어내며 일본을 비난했다.
그런대도 일본은 가만히 있었다.
미국이라면 꼼짝 못하는 일본인의 습성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만일 심판이 동남아에서 왔어도 그런 저자세를 취했을까.
일본과 미국야구는 스트라이크존이나 심판의 위치 등에 차이가 있다.
미국야구에서는 심판에 대한 폭행은 거의 없지만 일본에서는 상당히 빈번이 일어나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야구라는 미국제가 일본에 건너와 일본제가 되면서 문화적 차이에서 생긴 일이다.
결국 이 사건은 미국과 일본의 완전히 다른 야구문화의 토양, 심판이 일본말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빚어진 이른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등도 원인이다.
어쨌든 이것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문화에 있어서 어떤 문화가 더 우월하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그 문화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야구문화라는 물속에서 동등한 입장이 되어 자신의 것들을 꽃피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떤 프로야구 문화를 키우고 또 자부심과 동시에 균형감각을 어떻게 가져야 될 것인가.
비굴한 것 같은 이웃나라 일본 프로야구의 현실을 보면서 부정 방망이 소동으로 한달 이상이나 끌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를 생각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