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33)

기사입력 1997년 06월 02일 14시 18분


"나흘전이라면 너는 실종 이틀후에 이곳으로 뛰었겠다."

얼굴을 굳힌 윤의충이 묻자 교위가 머리를 숙였다.

"예. 장군, 이틀을 달렸으니 그렇게 되옵니다."

"다른 말씀은 없으시더냐?"

"없었소이다. 그냥 뛰라고만 하셨소이다."

윤의충이 길게 숨을 뱉었다.

"대감께 면목이 없다."

"별장께서 수십명 병사를 끌고 내륙을 뒤지고 있습니다."

만척을 말하는 것이다.

"허나 대감께서 발설하면 베시겠다고 하신 통에 아직 밖으로는 말이 새나가지 않은줄로 아옵니다."

"수고했다. 객사에서 쉬어라."

교위를 보낸 윤의충이 병사를 시켜 배중손과 구광을 불렀다. 고현의 자매주막에서 술을 마시던 그들이 청에 들어섰을때는 한식경쯤이 지난 후였다.

두사람 모두 윤의충과 김영과의 사이를 안다. 구광은 창고장 노릇을 할때부터 알았고 배중손은 김영의 심부름으로 금부처를 가지고 왔었다.

사연을 들은 그들이 놀란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구광은 단순한 성격이다.

술로 벌개진 얼굴을 들고는 불쑥 입을 열었다.

"뭐, 기다리면 이곳으로 오겠소이다. 그나저나 야생마같은 아씨시오."

그가 힐끗 윤의충을 곁눈질 했다.

"지아비를 잡고 흔드는 마나님이 되실것 같소이다."

"이 무식한놈 같으니."

윤의충이 혀를 찼다.

"자칫 말이 새면 혼사가 깨지고 대감께 누가 되는 일이다. 이놈아, 네 머리에는 술이 들었느냐?"

"예, 두동이쯤 마셨소이다."

"장군, 이쪽에서도 사람을 보내는 것이."

정색을 한 배중손이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곳으로 오신다면 역마길을 짚어 오실터인즉 이곳에서도 되짚어 가는 것이 낫겠소이다."

"이번에 오덕도로 불러들인 황방이가 제격이요."

이제는 구광도 정색을 했다.

"그놈은 야적질로 고려천지를 휘젓고 다닌덕에 지리에 발고 말을 잘탑니다."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기병 이십을 그자에게 내주어라. 그리고 절대로 이 일을 발설하면 안된다."

"그땐 목을 떼겠다고 합지요."

"별장 만척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조력하라고 일러라."

"그 야적은 별장이 되었는데 나는 진장밖에 안되었소이다."

배중손이 그의 말을 막듯이 물었다.

"장군, 아씨를 찾았을때의 방도를 말씀해 주시오."

"곧장 대감께 보내는 것이다."

자르듯 말한 윤의충이 상체를 세웠다.

"반항한다면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사지를 묶어서라도 데려 가도록 해라."

구광과 배중손이 서둘러 청을 나가자 윤의충은 한동안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틀림없이 김영은 자신을 찾아 이곳으로 내려오는 중일 것이다. 그러나 단신으로,그것도 여자의 몸이다.

아직 치안이 잡히지 않은 내륙은 거의 무법천지여서 백주에도 야적이 출몰하고 멀쩡한 양인이 강도로 돌변하는 세상이었다.

윤의충은 소리를 죽여 숨을 내품었다. 강화에서 진주목까지는 천리가 넘는다.

그는 가슴에 손을 넣어 비단주머리를 꺼내었다. 김영이 보낸 금부처가 든 주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