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이트] 울분 삭이는 '현대판 처용'
기사입력 1997년 05월 26일 14시 40분
고등학교 고문(古文)시간에 배웠던 `처용가'가 생각난다.
동경 밝긔달에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와 자리보곤
가라리 네히어라
둘혼 내해었고
둘혼 뉘해언고
본디 내해다마는
앗아날 어찌하릿고_
신라 49대 헌강왕 때 지어진 향가 `처용가'다. 좀 더 쉽게 우리말로 풀어 볼작시면 이렇다.
`경주 밤거리에서 늦게 놀다 집에 돌아 와 보니 방안의 다리가 넷이다. 둘은 아내 것이니 내 것이지만 나머지 둘은 누구 것이냐…'라는 타령이다.
처용은 밖에서 춤을 추며 침입자를 나가게 했다는 옛 야그다.
그런데 `현대판 처용'은 바로 흉기를 들고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가게서 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 곁에 젊은 대학생이 누워 있었고 아내 곁에서 잠을 자던 그 남자를 불문곡직 찌르고 만 남자가 살인 혐으로 구속이 된 것이다.
그 상황에서 누군들 열을 받지 않을까만 처용의 후예가 왜 그리 성질이 급했을까?
나중에 아내의 얘기로는 술에 취해 집에 가는데 그 젊은이가 우산을 받쳐 주고 …별 일(?)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앞서의 상태는 오늘날에도 수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지금도 캬악！ 하며 곧바로 `현장즉석해결'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조용히 냉철하게 생각을 해서 울분과 충동을 다스리는 처용들도 많다.
예1. 얼치기 처용－술에 취한 처용이 집에 들어 갔는데 아내 곁에 누군가 있다. 그는 중얼거리며 나온다.
"아, 나는 이미 집에 와 있었구나. 나는 다른 집에 가야 할 사람이야."
예2. 순진한 처용_출장길을 앞당겨 와 봤더니 아내 곁에 다른 남자가 누워 있다. 아내가 먼저 말문을 연다.
"이 남자를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나한테 결혼 후에도 끝내 못해준 다이아반지를 해 준 그 주인공이 이 남자예요."
남편이 힘없이 말한다.
"그 분 감기 들겠어. 이불 잘 덮어드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