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열흘 붉은 꽃은 없다 (4)
기사입력 1997년 05월 11일 15시 24분
사파리에서 가장 덩치가 큰 `헤비급' 곰 2마리가 한꺼번에 흥분해서 날뛰니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특히 맘모스와 킹콩 사이를 가로막은 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
밤늦도록 괴성을 지르며 상대의 기를 죽이려던 맘모스와 킹콩은 목이 쉬어 더이상 악을 쓸 수 없게 된 한밤중에야 겨우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됐다.
킹콩이 에버랜드에 와서 처음 맞는 아침이다.
킹콩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옆방의 맘모스를 비롯해 다른 곰들은 철장문이 열리자 모두 어디론가 나가는 것이었다.
한데 자신의 방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킹콩의 첫 아침은 어둡고 침울하게 시작된 셈이다.
사파리에서는 외부에서 새 식구가 스카우트 돼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사파리에 내놓지 않는다.
킹콩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킹콩 방을 굳게 잠갔던 자물통이 풀리고, 굉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킹콩은 나가야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느릿느릿 걸어나갔다.
킹콩은 긴장했다.
밖에 나가면 어젯밤 옆방에 있던 괴물 같은 놈이 있을 게 분명했다.
전주에서 싸움께나 했던 킹콩은 나름대로 맘모스와의 맞대결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윽고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리며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데 왠일인가.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만이 킹콩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파리가 아닌 200여평의 간이방사장이었다.
운동시간이었다.
킹콩은 간이방사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곰곰이 생각했지만 온통 알 수 없는 일 뿐이었다.
`다들 어디 간 걸까? 멀지 않은 곳에서 냄새가 나는 걸로 봐서 이 근처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한데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간이방사장 구석에 있던 웬 덩어리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게 아닌가.
사파리의 `계엄군' 패트롤카의 존재를 알 리 없는 킹콩은 도저히 해볼 도리가 없는 상대라는 사실을 깨닫자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패트롤카에 이리저리 몰린 킹콩은 자신이 갈 곳은 아까 나온 구멍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운동시간이 끝난 것이었다.
`킹콩 길들이기'는 이런 식으로 며칠 동안 계속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