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6)
기사입력 1997년 05월 04일 14시 26분
배중손은 두손으로 키를 단단히 움켜잡고 있었지만 물결에 휩쓸려 몇번씩이나 주저 앉았다가 일어섰다.
허리에 밧줄을 묶어 키에다 묶어 놓았으므로 파도에 떠내려갈 염려는 없다.
"꽉 잡아라！"
배중손은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이제 왜선과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백보도 안되었다.
파도를 서너번만 타면 금방이다. 휘하 수군들은 모두 배에 몸을 묶어놓고 있었으니 그들의 생사도 배중손의 손에 달렸다.
배의 옆면에 부딪친 파도가 배를 덮었으므로 그는 온통 파도를 뒤집어썼다.
머리를 흔들고 삼켰던 바닷물을 뱉은 순간 왜선은 금방 오십보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목표는 정했다. 불타오르고 있는 놈은 젖혀두고 뒤로 빠지는 성한놈이다. 부하들은 이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 거친 파도를 헤치고 포구 밖까지 나왔다가 되짚어서 들어오는 중인 것이다.
"오른쪽 노를 세워라！"
배중손이 소리치자 오른쪽 네개의 노가 일제히 위로 솟아 세워졌다. 그순간 배는 오른쪽으로 선수가 돌려졌다.
파도가 선미를 때리면서 다시 배가 솟아올랐고 이제 왜선은 아래쪽으로 보였다.
이미 뭍에서 이백보쯤 떨어져 나온 왜선의 선미가 목표인 것이다. 배의 갑판 한쪽이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었으므로 목표는 똑똑히 보인다.
왜선과의 거리는 이제 삼십보가 되었다.
"오른쪽 노를 저어라！"
방향을 가늠한 그가 악을 썼고 노가 일제히 물살을 퉁긴 순간 왜선이 와락 다가왔다.
선미의 거대한 키가 바로 눈앞이다.
"꽉 잡아라！"
배중손이 고함을 친 그다음 순간 선체는 격렬한 충돌음과 함께 진동을 했다.
충격으로 나가 떨어졌던 배중손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부쉈다！"
이쪽 배의 선수에 장착된 기둥이 왜선의 키와 함께 선미 일부를 박살낸 것이다.
"와앗！"
수군들이 함성을 질렀다. 키를 잃은 왜선이 빙글 돌면서 이쪽과 뱃전을 맞대었다가 파도에 밀려 금방 떨어졌다.
배안에서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고함을 지르고 아우성치듯 부르고 답하는 소리들은 모두 왜말이다.
"노를 저어라！"
배중손이 소리치자 양쪽으로 뻗어나온 노가 힘차게 파도를 퉁겼다.
이제 곧 항안이다. 앞쪽의 불타오르는 왜선 한척에서 왜인들이 다투어 물로 뛰어들고 있었다.
선미가 부숴진 왜선은 우측으로 향하는것 같더니 다시 선수를 뭍으로 돌리는 중이었다.
키를 잃고 파도를 맞아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서너번 노를 젓자 배는 좌측의 방파제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파도는 낮다.
"궁사들은 선수로！"
허리를 묶은 밧줄을 풀어낸 배중손이 소리쳤다.
그의 배는 불타오르는 왜선의 뒤쪽을 가로막듯이 멈춰섰다.
왜선의 주위는 대낮같이 밝았으므로 궁사들은 일제히 활에 살을 끼웠다.
"쏘아라！"
삼사십보 정도의 거리였다. 십여명의 궁사들이 쏘아댄 화살이 날았고 아직도 불타는 왜선에서 어른거리던 왜군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대승이다."
활에 살을 끼우는 배중손의 목소리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