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아버지와 아들 (3)
기사입력 1997년 05월 04일 14시 26분
창간호 표지에 실릴 대권주자 선정, 기자들 교육, 내용분석 등 해야 할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며, 연구소 요원들과 비젼21의 역학관계까지 세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제일무역에 타깃을 두고 있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제일무역은 최소 50대 재벌 그룹으로 진입해야 하며, 차영일을 국회에 진출 시켜야 한다.
허원행의 꿈은 갑자기 풍선처럼 커져 버렸다.
처음에는 장혜정을 이용하여 정－재계 거물들의 돈을 뜯어 먹을 생각에 골몰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자관계 청산'의 차성덕 회장과 차영일 아들 사이로 파고든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 온 허원행은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일일이 검토하며 누가 차기 대권에 근접해 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밤, 정보 제공자와 금융계 큰손 이성구, 그리고 장혜정이 합석한 술자리가 마련된다. 여기에 차영일까지 불러냈다.
이들을 축으로 완벽한 패밀리를 구성할 것이다.
여기서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할 작정이다.
"헌데… 이거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겠군. 어떻게 바람이 불지 알 수가 있어야지?"
언론의 여론조사도 들쭉날쭉 대권 주자의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신한국당 영입파 이홍구 전 총리가 김심(金心:대통령 속마음)이라는 지배적인 논조에도 불구하고 최후 승자는 이수성 전 총리가 될거라는 분석도 있고,
여론조사 인기 1위는 이회창과 박찬종이 박빙의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에 호남과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DJP 연합의 세력도 만만치 않아 순조롭게 합칠 경우 여권 후보를 누를 막강한 세력이 될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휴… 누구를 밀지?"
시사주간지, 정보분석과 여론조사기구, 여기에 제일무역의 돈.
이 정도 세력이면 어느 대권 주자도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K의 측근 장국장이 여러번 협박을 해오기도 했다.
비젼21 창간을 늦춰라, 연구소를 해체하라, 그게 싫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
청와대나 K의 이름을 팔고 다니면 죽는 줄 알아라.
하지만 허원행은 눈하나 끔벅하지 않았다. 이미 그 물건은 쓰레기나 다름없다.
굳이 없애지 않은 건 이런 장국장의 협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할테면 하라. 그럼 나는 이 테이프를 수십개 만들어 전국 언론은 물론 외신 기자들에게 배포하겠다."
역으로 공격하면 장국장도 꼬리를 감추었다.
앉아 있던 허소장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시간이 되어 간다.
오늘은 정보 제공자로부터 또 다른 정보가 입수 될 것이다.
그리고 패밀리 결속을 다지는 멋진 파티가 전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