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3)

기사입력 1997년 05월 01일 15시 36분


"저 아이를 데려오너라."

윤의충이 손을 들어 가리키자 군사가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비바람이 거칠었다. 아이와 여인이 한덩어리가 되어 대청앞에 선것이 모두 물에서 건져낸 형상이다.

아이는 열살 안팎의 사내였다. 맑은 두눈을 치켜뜨고 윤의충을 바라보면서 전혀 두려운 기색이 아니다.

그러나 추위에 질린듯 입술이 파랬고 온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윤의충이 아낙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어민가?"

"예. 장군어른."

여자가 온몸을 오그렸다. 이십대 후반쯤으로 남루한 옷에 뼈만남은 몸이었다.

"집에 데려 가겠사오니 놓아줍시오."

"아이가 시장한 모양이다."

윤의충이 옆에 창을 짚고 선 군사에게 일렀다.

"아이와 아낙을 부엌으로 데려가 먹여라."

멍한 표정이 된 아낙의 팔을 군사가 끌었다.

"자. 가자."

어촌이라지만 어선도 어구도 없는 폐촌이나 다름이 없다.

수차례에 걸쳐 전국을 짓밟은 몽골군은 배를 태우고 어구를 찢었기 때문에 어민들은 바다로 나갈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서해안의 침탈이 더 심했다. 그가 늦은 저녁을 마쳤을때는 술시가 지나 있었다.

비바람이 조금 잦아진 대신 파도소리가 크게 울렸다.

"장군께 인사드리오."

아낙이다. 아이를 앞세운 아낙이 토방위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마른옷을 입은 모자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배부르게 먹었느냐?"

윤의충이 묻자 아낙이 머리를 숙였다.

"장군, 부디 복 받으소서."

"아이 애비는 어디에 있느냐?"

"오년전에 몽골군에 죽었소이다."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열에 일곱의 애비는 몽골군에 의해 죽었다. 아이와 시선이 마주친 그가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김복이요."

턱을 든 아이가 윤의충을 똑바로 바라보았으므로 윤의충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힘을 길러서 원수를 갚거라."

"…."

"어미를 공경하고 보살펴야 할것이다."

아이는 가만있었으나 아낙이 머리를 떨구었다. 아이를 끌고 아낙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윤의충이 대청 뒤쪽의 침소로 들어선것은 해시 무렵이다. 이제 바람도 거의 그쳤고 빗발도 뜸해졌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배를 띄울수가 있을 것이었다.

그가 막 겉옷을 벗었을 때이다. 문밖에서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 앞에서 멈췄다.

"방호사께 전갈이오."

다급한 목소리에 윤의충은 문을 열었다.

배중손 휘하의 수군이다. 그가 헐떡이며 윤의충을 올려다 보았다.

"방호사 어른, 폭풍을 피해 왜선 두척이 들어와 있습니다."

윤의충이 겉옷을 다시 입었다.

"어디에 있느냐?"

"저희 배와 두마장쯤 떨어진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윤의충은 한걸음에 마당으로 내려섰다.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주위에는 수하 군사가 모여 있다.

"군사들을 모아 나를 따르라."

교위에게 뱉듯이 말한 그는 앞장을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