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수첩] 옥수수 꺼내먹는 북한선수들
기사입력 1997년 04월 29일 15시 22분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하고싶은 말이나 행동을 억지로 자제하고 있는 것일까.
제44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임원 4명과 선수 3명의 북한선수단은 하나같이 너무도 무표정하다.
특히 `황장엽씨 망명'등 최근에 발생한 여러가지 미묘한 문제들을 의식해서인지 이들은 아예 `남조선사람'들과의 접촉자체를 거부하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북한팀의 단장이자 감독으로 참가하고 있는 김희진 북한탁구협회 서기장의 냉랭한 표정은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변할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갖게한다.
그는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세계를 정복했던 91년 일본 지바（千葉）대회 당시 45일 동안이나 한국선수단과 숙식을 같이해 기자들과도 안면이 깊은 사람이다.
특히 그는 당시 충북 청원에 살고 있던 누나 화진씨와 극적으로 국제통화를 한뒤 목이 메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곳에서 "남조선 기자 아이들은 건방지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하고 다닌다.
하기야 본인들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거역할 수 없는 `외부의 압력' 탓에 어쩔 수 없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지난 28일 남북대결에서 승리한뒤 한국선수들과 의미없는 악수를 나누고는 가방에서 옥수수를 꺼내 입에 물고 총총히 경기장을 떠나는 북한선수들을 보면서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참으로 여전히 어렵고 힘든 과제임을 실감해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