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기] 이승희의 '나의꿈 나의삶' (2)
기사입력 1997년 04월 26일 14시 04분
78년 2월19일.
여덟살의 나는 두살 아래인 남동생 승재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 남매는 아빠가 계신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다. 삼촌의 `빠이빠이！'를 뒤로 하고.
"TV로만 보던 미국땅으로 간다.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와 원더우먼이 있는 나라 미국으로！"
얼마나 날아갔을까. 우리 남매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땅이 미국인지도 몰랐다. 나와 동생의 미국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미국은 놀라운 나라였다. 무엇보다도 슈퍼마켓에는 별별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햄버거와 콜라, 내가 특히 좋아하던 바나나가 있었다. 나는 하루종일 바나나를 먹으며 미국에 감격해 했다.
600만불의 사나이와 원더우먼은 영어로 얘기했고, 나는 승희라는 이름대신 산드라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아빠는 좋은 2층집을 마련해두고 계셨다. 나무가 예쁘게 심어져있는 정원이 있었고, 지하에는 큰 스테레오, 탁구대 등이 설치돼있는 게임룸도 있었다.
그러나 아빠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아빠는 술과 도박이라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특히 도박을 하면 집을 팔 정도로 큰 돈을 걸곤 하셨다.
여기서 친엄마 얘기를 간단하게 해야겠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건강이 몹시 안좋으셨고, 그래서 어머니는 우리들을 두고 미국으로 떠나 재혼했다(나중에 10대때 엄마를 만났지만 서먹하기만 했다).
내게 `여러 엄마'가 생기게 된 이유다. 아빠는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여자를 만나면 한달만에 결혼하고, 그 결혼은 곧 파경에 이르곤 했다.
악순환. 아빠와 새엄마들은 부부싸움을 하고, 그러면 우리 남매는 방에 들어가 숨을 죽였다.
새엄마는 나가버리고 아빠는 또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셨다. 아빠는 직장을 옮기고 우리 남매는 전학과 이사를 되풀이해야 했다.
학교생활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나는 2학년에 들어가 미국애들과 공부하게 됐다.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어야 했다.
화장실에 가고싶으면 교사에게 `화장실'이라고 쓰여진 카드를 보여줬다. 뒷면에는 영어로 `레스트룸'이라고 쓰여있었다. 아빠가 만들어준 카드였다.
그런 나는 미국아이들에게 좋은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그애들이 동생 승재를 놀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동생을 놀리면 당장 달려들어 한국말로 욕을 하며 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