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대학가] '개인 리스트' 붐
기사입력 1997년 04월 23일 16시 23분
`리스트 없으면 팔불출.'
바야흐로 `리스트 전성시대'다.
올들어 리스트가 우리 사회의 초점이 되자 `리스트 신드롬'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정태수 리스트'를 비롯해 `황장엽 리스트', `박경식 리스트', `박태중 리스트' 등 핵폭탄급 위력을 지닌 신종 리스트가 쏟아져 나오자 `리스트'는 우리사회에 가장 깊숙히 녹아든 낱말이 됐다.
（주）태평양 홍보실 공주열씨（26）는 며칠전 회식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딴 `공주열 리스트'를 들먹여 한바탕 웃음을 안겨주었다.
공씨는 느닷없이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비리를 안다며 "내가 리스트를 공개하면 여러 사람이 다친다"고 엄포를 놓은 것.
이같은 `리스트 신드롬'은 회사는 물론 대학가에서도 널리 퍼져 `리스트 없는 사람은 팔불출'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가 됐다.
지금까지 리스트를 갖고 있다고 소문난 사람들이 적어도 `깃털'보다는 `몸통'에 가까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리스트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사내연애를 하는 커플, 외도를 하거나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린 동료와 상사 등을 담은 애교 섞인 것이 대부분이어서 불경기로 시름에 젖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흥미거리가 됐다.
특히 젊은 애인을 만나는 유부남들은 행여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를까봐 전전긍긍 한다는 것.
또 대학가에서는 `문어발식 데이트족'이 리스트에 오르는 주요 인사에 속한다.
오직 한사람만을 생각하는 순정파보다는 `더블', `트리플'에 이어 심지어는 요일별로 만나는 이성을 달리하는 남녀 학생에게는 자칫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게 리스트 공개이기 때문이다.
`리스트'가 우리 사회에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몇해전 외국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개봉되면서.
그러나 쉰들러 리스트는 이름이 올라있는 사람이 살아남는 `필생부（必生簿）'이지만 요즘 나도는 리스트는 이름이 오르면 죽는 `살생부（殺生簿）'라는 점에서 타락하고 살벌해진 세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