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식사때마저 '머슴'대접 받아서야'
기사입력 1997년 04월 22일 15시 30분
숟가락을 내려 놓기도 전에 `손님 나가신다. 밥상 치워라'라고 외치는 주인, 자장면을 시킨 손님에게 짬뽕을 주고는 "싫으면 나가면 될 거 아니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점원들….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식당주인의 눈치부터 살펴야 한다. 직장인 수는 갈수록 늘고 있는 반면 재개발과 높은 땅값으로 식당 수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여온 시내 중심가 식당들이 최근 한 젊은이의 한마디 말에 앞다퉈 서비스 개선을 약속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삼성그룹 사회공헌팀의 서민석씨（28）.
서씨는 최근 자신의 직장 근처인 중구 태평로 2가의 식당 100여곳을 비롯, 시내 중심가 식당들의 낙후된 서비스를 눈에 띄게 개선시킨 인물이다.
서씨는 지난달초 삼성그룹 사내 통신망 `싱글（SINGLE）'을 통해 직장인들이 식당으로부터 당해온 `피해 사례'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루 40∼50건씩 한달여 동안 1천건이 넘는 제보를 받았다는 서씨는 제보내용을 프린트한 뒤 식당가를 헤매다닌 끝에 최근 식당주인들로부터 항복선언을 받아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하더니 `서비스 개선을 하지 않으면 통신망을 통해 불매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더니 태도가 바뀌더군요."
음식점 점원들이 손님에게 깍듯이 인사를 시작한 것은 물론, 음식에서 머리카락이나 손톱이 발견되는 일도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 또 몇몇 식당들은 서씨가 다녀간 뒤 밥값을 내려받기 시작했다.
서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주변 동아그룹 노동조합측과 연계해 식당 서비스 개선운동을 서소문동까지 확산시킨 것을 비롯해 남대문, 무교동,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와 수원, 창원 등지까지 확대시키기로 하고 이미 20여명으로 구성된 지역 대표까지 선임했다.
"서비스는 커녕 주인에게 모욕을 받아가면서까지 점심 한 끼를 때워야 하는 직장인들이 너무 많아요. 식당에서까지 `머슴'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가 안타까워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서씨는 "봉급쟁이라도 먹을때 만큼은 왕（王）처럼 먹을 권리가 있다"며 "이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돼 손님을 왕처럼 모시는 식당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희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