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사랑방] '하하하 매일 이랬으면...'

기사입력 1997년 04월 21일 17시 20분


◇…대우가 97아디다스컵 프로축구대회에서 극적인 대역전극을 펼치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역전신화의 숨막혔던 순간들과 그 희열의 순간들을 돌이켜 볼까요.

◇…지난 19일의 마지막 9차전 직전까지 순위는 일화가 승점 14로 선두인 가운데 유공（+6） 현대（+4） 대우（+1）가 골득실차만 다를뿐 승점 13으로 2위권이었습니다.
따라서 일화와 유공이 정상에 오를 확률이 단연 높았지만 경기전부터 대우와 현대의 반전 기미가 엿보였습니다.
이기면 무조건 우승인 일화가 주전 6명이 부상과 경고 등으로 출전하지 못해 대우에게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데다 유공도 스타일이 비슷한 전남에게 고전하리라는게 축구인들의 예상이었습니다.
실제로 전남의 정해성 코치는 현대 고재욱 감독에게 "전남이 유공은 무조건 이긴다. 현대가 삼성만 이기면 우승이다"라고 이날 아침 전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영원한 라이벌' 삼성전이어서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사이 대우가 그라운드의 `4.19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수치상으로만 우승이 가능하게 보였으나 현대가 삼성과 0대0으로 비기고 전남이 유공을 6대0으로 대파하는 사이 일화문전에 무려 4골을 퍼부어 정상정복의 파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대우 안종복 부단장은 우승과 함께 `오줌싼 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선수들의 집중적인 샴페인 세례로 상의는 물론 바지까지 흥건하게 젖어 마치 어린아이가 오줌을 싼 모습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안부단장은 "우승만 한다면 매일 옷에 오줌을 싸도 좋다"며 옷을 갈아 입을 생각조차 안한채 기뻐하더군요.

◇…대우의 우승은 잠자리에서 싹텄다는 이색풀이가 있습니다. 대우와 일화는 경기전날밤 마산 로얄관광호텔에서 `적과의 동침'을 했는데 일화가 7층을 쓴 반면 대우는 5층을 사용했습니다.
이에 대우선수들은 한결같이 "어젯밤에 일화에 눌려서 숨도 제대로 쉴수가 없었는데 오늘（19일）은 그라운드에서 두배로 숨을 죄겠다"며 전투의지를 다졌는데 현실화됐다는 것입니다.

◇…97아디다스컵 마지막날은 `통신 전쟁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울산（현대-삼성） 마산（대우-일화） 광양（전남-유공）의 경기결과에 따라 우승팀이 결정되는 탓에 상위 4개구단 관계자들은 90분내내 핸드폰에 매달려 있었답니다.

◇…`통신 전쟁의 날'에 현대는 전반 5분 무렵부터 흥분에 휩싸였습니다. 전남과 대우가 유공과 일화에 각각 1-0으로 앞선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반전이 끝났을때는 장내방송을 통해 양 구단이 2－0으로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관중들과 현대직원들은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듯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후반 20여분이 지나면서 이들의 흥분은 초조감으로 변했습니다.
선수들은 1골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패스미스를 연발했고 관중석에서는 무승부 가능성에 가슴을 졸인 것입니다. 결국 0대0으로 비기자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드러 누웠고 허탈감에 빠진 관중들은 썰물처럼 관중석을 빠져 나갔습니다.

◇…전남에 0대6으로 대패한 유공 코칭스태프와 직원들도 넋을 잃은 모습이었습니다.
창단 이래 처음으로 6골차 패배 충격탓인지 선수단은 저녁도 먹지 않은채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기내에서도 침묵으로만 일관했습니다.
이런 초상집 분위기에서도 유공 니폼니시 감독은 냉정함과 의연함을 잃지 않더군요.
경기중 흥분한 선수들이 심판의 애매한 판정에 항의할때 마다 이를 나무랐고 경기후에는 밀려드는 어린이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잊지 않는 `신사 매너'를 보인 것입니다.

◇…일화가 대우에게 1대4로 패해 우승컵을 날림과 동시에 직원들의 고생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19일 아침 임송본 경리국장은 숙소인 마산 로얄관광호텔 앞 슈퍼마켓에서 샴페인 1상자（20병）를 구입해 땀을 뻘뻘 흘리며 마산공설운동장까지 가져갔으나 뚜껑을 딸 기회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딱 두골만 넣어라. 샴페인 한번 흠뻑 뒤집어 써보자'고 간절히 소망하던 임국장은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팀이 힘없이 주저앉자 아예 눈을 감아 버리더군요.

◇…대우의 우승 환희속에 묻히긴 했지만 삼성도 은근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로 재계의 라이벌인 현대의 우승을 저지했다는 뿌듯함을 만끽한 것입니다. 전반전에 우승후보인 유공과 일화가 각각 0-2로 뒤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삼성의 한 직원은 "이거 큰일이다. 현대의 우승을 막아야 한다"며 선수들에게 선전을 독려할 정도였습니다.
윤성규 단장과 김 호 감독도 애써 표정을 자제 했지만 마치 큰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뒤의 안도감이 역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