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암투 (19)

기사입력 1997년 04월 15일 14시 41분


"들었소이다. 대감."

사내의 말소리는 낮고 억양도 없다. 그리고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당한 수준의 검객 같소이다."

기대원의 시선이 박황에게로 옮겨졌다.

"이자는 내 호위장으로 사극이야."

사극은 박황이 보내는 시선을 받지도 않았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지만 박황은 이런 분위기의 사내는 처음이었다. 그가 헛기침을 했다.

"대감, 그자를 조심 하옵시오. 그자는 지난번에 탈무아와 동행하던 조복서도 벤것 같소이다."

쓴웃음을 지은 기대원이 보료에 상반신을 기댔다.

"탈무아는 오히려 구해 주었다고 들었어. 김준이 보낸 그자가 맞을 것이야."

그가 턱으로 사극을 가리켰다.

"이 사람은 이백명의 무사를 거느리고 있어. 그리고 나는 조복서와 입장이 달라."

"김준만 제거하면 출륙이 됩니다. 대감."

"김준이 안간힘을 쓰고 있더군. 이도명의 아들을 사위로 삼는 것을 보니."

"기(氣)가 약합니다. 대감."

사극이 말을 이었으므로 박황이 다시 긴장했다.

"양쪽 관자놀이에 붉은 기운이 떠 있소이다. 색(色)을 많이 밝힌 탓이오."

"허어. 김준의 여식이 속을 끓이겠다."

기대원이 웃었다.

"자고로 색을 밝히는 놈 치고 끝이 좋은 놈을 보지 못했느니."

박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감, 소직은 이만 물러가오."

"고맙소. 병마사."

방을 나온 박황은 절마당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하들에게로 다가갔다. 모두 기마군으로 교위 서도명이 그에게 말고삐를 건네주었다.

"장군, 진영에 들렀다 가시겠습니까?"

"아니, 곧장 간다."

박황이 몸을 날려 말에 올랐다. 아직 한낮이다. 십여기의 기마군은 한 덩어리가 되어 절마당을 달려 나왔다.

법흥사는 본래 중이 백여인이나 기거하던 큰절이었는데 전란통에 흩어져 늙은중 대여섯밖에 남지 않았다.

중 하나가 하마터면 말발굽에 차일뻔 하다가 겨우 비켜났다. 그것을 본 군과 호위대 십여명이 낄낄대고 웃었다.

대로에는 한낮인데도 인적이 드물다. 선두를 달리는 박황의 옆으로 서도명이 바짝 붙어왔다.

"장군, 오덕포에 남아있던 송합이 배를 타고 떠났소이다. 아마 지금쯤 강화섬에 도착 했을 거외다."

박황이 박차를 넣자 조금 처졌던 서도명이 다시 붙었다. 오덕포에서 송합을 친것은 서도명이다.

두천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박황은 서도명에게 골라 뽑은 정예군 열명을 붙여 보냈던 것이다.

기습은 성공이었다. 이쪽도 세명이 죽었지만 금 30근을 빼앗는 전과를 올렸다.

게다가 상급으로 빼앗은 금 열근이 박황에게 주어졌는데 서도명의 몫은 한근이었다.

신바람이 안날리가 없다.

"장군, 기대감의 호위대에는 송나라 사람들이 많았소이다."

서도명이 소리치듯 말했다.

"모두 무공의 고수같이 보였소이다."

그는 들떠 있었다. 오늘은 천세루 주인 송백이 그들을 초대한 것이다. 그야말로 주지육림에 파묻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