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겁없는 아이들 (11)

기사입력 1997년 04월 04일 15시 43분

허실장이 전화를 받은 것은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막 잠에 빠져드는 순간 요란한 벨 소리에 잠을 깼다.

수화기를 들던 그가 소스라쳐 놀라 일어났다.

"뭐라구요?…. 회장님 차 번호를 기억했다가 찾아왔다구."

"그래…. 이 사람들 목적은 테이프 뿐이야. 그거 어떻게 했어. 태워 버리라고 했는데."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답답한 가 수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테이프 어떻게 됐냐구. 지금 우리 식구 목숨이 걸려있어."

"알았습니다. 그 여자 바꿔 주세요."

"여보세요… 당신이… 허실장이야?"

"그렇소."

"테이프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냐구. 잘못하면 당신이나 나나 다 죽어."

"……."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흠. 이것들도 걱정이 태산같군. 그렇다면 끌려다닐 필요는 없어.

"찾고싶소? 그 테이프."

"예. 찾아야 돼요. 잘못하면 다 죽어요.

그러니 가지고 있으면 줘요. 제발요."

"돌려받고 싶으면 날 찾아 오시오. 데리고온 사람들 돌려보내고. 마포 가든호텔 뒤 삼성아파트 1동 405호요."

그리고 대답도 듣지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그들도 박회장의 집에서 철수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리라.

알고싶었다. 어떻게 이런 촬영이 가능했으며 테이프가 어떻게 그여자 손에 입수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 여자에게 왜 소중한지를. 그렇게 40분이 흘러갔다.

정적에 휩싸인 아파트 복도에 다급한 여자의 하이힐 뒷굽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소리는 자신의 아파트 문앞에서 멈추어섰다.

허실장이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훤칠한 키에 머릿결이 치렁치렁한 여인이 서 있었다.

"당신이 허실장인가요."

"들어와요. 혼자 오셨죠. 난 불청객은 원치 않으니까."

"약속한 대로 혼자 왔습니다."

여인이 들어섰다. 허실장은 문을 잠그고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대통령 아들을 찍었으며 그 필름이 왜 당신손에 들어가게 된겁니까. 왜 회수하려 하는거구요."

여인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실장을 바라보았다.

"있기는 있는 겁니까. 태워버렸다면 찌꺼기라도 보여 주세요. 제 눈으로 확인해야 하니까."

"내가 보관하고 있소. 묻는 말에만 대답해요."

"복잡한 얘기는 아니에요. 오빠가 을지로 엠파이어호텔 총지배인이에요. 재계나 정계 거물들이 은밀히 만나 거래하거나 여자들과 만나 섹스를 즐기는 로열 룸이 있어요. 거기에 비밀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하여 찍은거예요."

"네?… 오빠가… 호텔에서?"

허실장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