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겁없는 아이들 (8)
기사입력 1997년 04월 01일 14시 52분
대통령 얼굴을 판에 찍은듯 닮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 소산(小山)이니 소통령이니 하는 별명이 따라붙는 로열 패밀리의 얼굴이다.
그가 회전의자에 앉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TV화면에 나타난 것이다. 박정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저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놀라기는 보디가드도 마찬가지다. 사고 승용차에서 튀어나온 사내들이 `우리 사장님, 소통령 친구야' 하던 말이 기억에 떠 올랐다.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박정태의 심복 허원행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비디오 작동을 중단시키고 기계에서 테이프를 꺼냈다.
"이런 거 잘못 건드리면 큰일납니다. 전부 모르는 것으로 해두세요. 제가 책임질테니."
그는 테이프들을 다시 재포장하여 자동차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누가 찾아와도 `모른다'라고 대답하라는 지시를 내려놓았다.
"잊어버려. 까짓 것 찾는 놈 있으면 돌려주면 돼. 자 술이나 먹자구."
대낮부터 술에 취해 쓰러져 잠이 들었고 오후 서 내려온 여자들 때문에 겨우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길고 긴 해도 어느새 꼬리를 감추었다. 날은 어둠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들 일행은 수안보 읍내로 자리를 옮겨 한 단란주점을 전세내어 목이 터져라 노래부르고 춤을 추었다. 두쌍은 근처 호텔에 투숙했고, 두쌍은 별장으로 돌아왔다. 박정태는 많아 취해 있었다.
"어때…. 허실장…. 재미 있었어?"
"그럼요. 신나는 하루였죠."
"이봐, 허실장. 오늘밤 우리 넷이…. 어때, 한 방에서."
또 그놈의 변태가 도발된 모양이다.
"회장님. 전…. 사실 머리가…. 필요하시면 혼자 둘 다 가지세요."
계집애 하나가 입을 실룩였다.
"난 싫어. 허실장과 잘거야."
"그래? 허허."
박정태가 허실장 파트너의 젖가슴으로 손을 불쑥 집어 넣었고 계집애는 자지러질듯 소리지르면서도 거절하지는 않았다.
핸들을 잡은 손이 취기에 흔들거리기는 했지만 별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취한 척 했지만 허실장은 멀쩡했다. 지금은 술과 계집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그놈의 테이프 때문이다.
"뭐해！ 안잘거야?"
덥다며 여자가 푸른빛 블라우스를 훌쩍 벗어버렸다. 속살이 훤히 비치는 브래지어 속에서 터질듯한 두개의 젖가슴이 출렁이고 있었다.
"이래도 나보고 먼저 자라고 할거야?" 여자가 웃으며 뒤에서 껴안았다.
"날 뭘로보고 먼저 자라는거야."
"응…. 나 좀 할일이 있어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여자의 살내음은 언제나 남자를 이렇게 흥분시킨다.
